고대하던 결승 매트에 올랐지만 오른쪽 허벅지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21일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남자 68㎏급 결승이 열린 베이징 과학기술대 체육관.손태진은 올해 올림픽 세계예선 때 왼팔 팔꿈치 탈구 부상을 딛고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물리쳤던 마크 로페즈(미국)를 다시 만났다. 자신은 있었지만 오른쪽 허벅지 부상이 문제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다짐한 손태진은 1라운드 시작 20초 만에 오른발 앞차기 공격으로 먼저 포인트를 올렸다.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그는 종료 20초를 앞두고 다시 로페즈의 허점을 파고 들며 오른발 돌려차기로 스코어를 2-0으로 만들었다.

로페즈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로페즈는 2라운드 시작하자마자 거칠게 공격했고 주무기인 왼발 내려찍기로 1점을 가져갔다. 손태진은 감점까지 받으면서 1-1로 원점이 됐다. 3라운드 들어 손태진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허벅지 통증이 심해진 상태에서 로페즈의 공격에 급소 부분을 얻어맞고 매트 위에 고꾸라졌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손태진은 다시 일어섰고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다. 2-2로 그대로 3라운드가 끝나갈 무렵,손태진은 순간 방심한 로페즈의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기 직전 전광석화 같은 오른발 돌려차기 공격으로 상대 몸통을 가격했다. 스코어가 3-2로 바뀌며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손태진은 매트에 고개를 파묻고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손태진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태어난 '88둥이'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태권 전사 중 가장 어리고 국제경기 경험도 많지 않지만 기량 면에서는 금메달감이라고 평가받아 왔다. 소속팀 김세혁 감독은 얼굴 공격이 주무기인 손태진에 대해 "기술적으로는 보완할 것이 없다"고 자랑해 왔을 정도.2005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 1위를 차지한 손태진은 성인으로서 첫 출전한 국제대회인 지난해 5월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판에 알지미로 메자스(베네수엘라)에게 3-5로 패했다. 하지만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세계예선에서는 부상에도 1위를 차지하며 큰 무대에 빠른 적응력을 보여줬다.

경북체중-경북체고를 거쳐 지난해 단국대에 입학한 손태진은 초등학교 시절 몸이 허약해 태권도를 시작했다. 올림픽 무대에 오르기까지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해 올림픽 세계예선대회를 앞두고 대표 선수 자격 시비에 휘말렸다. 실업팀 삼성에스원에 입단한 뒤 단국대를 다니다 같은 해 3월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표선발전에 대학 소속으로 출전한 것이 뒤늦게 문제가 됐다. 결국 올 1월 대한체육회가 실업팀 소속 선수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선수등록 규정을 개정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손태진은 "정말 태권도를 하기 싫었다"고 당시 마음고생을 떠올렸다.

올림픽 세계예선은 더욱 드라마 같았다. 16강전에서 왼팔 팔꿈치가 탈구되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지만 8강에서 미국 강호 마크 로페즈를 연장 끝에 누르고 결국 1위에 오르는 투혼을 발휘했다. 올 3월부터 세 차례 열린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는 재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태극마크를 쟁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섰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