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해외와 국내 악재들이 불거지며 사면초가에 처한 형국이다.

미국 경제지표들이 경기 둔화를 계속 확인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2400선이 다시 위협받으며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 국내 증시를 위축시키고 있다.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수급 불안에다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더 이상 '주가가 싸다'는 것만으로는 증시 반등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추세적으로 낮아지는 '디레이팅(de-rating)' 국면으로의 진입을 우려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주가 저평가를 의미하는 '리레이팅(re-rating)'이 호재로 통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투자심리가 바닥인 장세여서 펀더멘털(내재가치) 매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며 "추가 하락 가능성도 열어놔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스피 9개월 만에 27% 하락

외국인은 이날 전기전자 통신 건설 업종을 중심으로 2737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전일 미 증시가 강보합을 보이긴 했지만 서부텍사스 원유(WTI)는 4.9% 급등하며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고 경기선행지수는 예상보다 큰 폭으로 하락해 경기전망을 어둡게 했다. 결국 외국인 매도 공세 속에 코스피지수는 작년 4월6일(1484.15) 이후 16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사상 최고치(2064.85)를 기록한 작년 10월31일에 비하면 9개월여 만에 27.7%나 급락한 셈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은 증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잠시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5월까지 두 달 정도 '안도랠리'를 펼치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유가급등에 따른 'S(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공포'가 가세하며 증시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달 16일 이후 1500~1600 선의 좁은 박스권에서 몸부림치던 지수는 결국 이날 1500선 아래로 밀려났다. 조익재 CJ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모기지 금리 하락에 따른 신용경색 완화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 한 3~5월과 같은 반등세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투자심리 회복이 급선무

국내 내부적으로는 수급 불안이 투자심리를 억누르고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지난 18일부터 사흘 연속 순유출로 돌아섰고 기관의 손절매 물량 출회 우려감까지 나오고 있다. 19일부터 나흘간 1조2000억원 이상을 팔아치운 외국인의 순매도 강도도 재차 거세지고 있다.

이진우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 PER는 1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저가 메리트가 통하지 않는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준 PER는 9.4배로 2004~2007년 평균치인 10배 아래에 있다. 지난해 시장 PER가 기업 실적의 상향 조정 기대감으로 꾸준히 높아지던 '리레이팅'과 정반대 의미인 '디레이팅'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경수 토러스증권 연구위원도 "투자심리가 악화되면서 저평가 매력이 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가치함정' 구간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을 억누르는 각종 악재들이 단기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감이 지배하고 있어 1400 선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진우 연구위원은 "물가부담이 완화되고 있고 경기 경착륙 가능성이 아직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디레이팅이 본격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