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란 건 말야 죽기 전에 피는 거란다

파는 거?

아니 피는 거

피 해봐



빨간색 윗옷만 입고 다니는

야한 곰이 나오는 만화만 줄창 보더니

아들놈도 윗옷만 입고 고추를 달랑거린다

그렇게 계절은 피었다 졌고

열꽃이 피었다 지더니

아들놈은 말빨이 쎄졌다

덕분에내 귓속에선 확성기가 울어댔고 개가 짖어댔고 어머니가 울고 갔다

오늘부터 죽기 시작이다 (…)


이승재 '무당벌레' 부분


꽃은 죽기 전에 핀다. 죽음으로써 다른 꽃으로 거듭 태어난다. 물결이 또 한 물결을 밀어내듯 생명이 또 한 생명을 위해 길을 내주는 것이다. 예외는 없다. 윗옷만 입고 고추를 달랑거리던 아들녀석이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계절이 피었다 지고 열꽃이 피었다 지면서 녀석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될 것이다. 그 빛나는 개화를 지켜보면서 슬슬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 낡은 생명을 희생해야 하는 안타까움.우리 모두가 주연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 냉혹한 반복을 누구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나고 죽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했을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