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자동차업계를 호령했던 미국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의 경영 위기가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에까지 심각한 여파를 미치고 있다. 납품 물량 확대와 단가 인상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투자 원금 회수와 영업수지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GM과 스프링 공급계약을 맺었던 A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주 원료인 스프링강 가격이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치솟았지만 GM은 당초 계약 내용을 앞세워 단가 인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 가격대에서 납품을 계속할 경우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그렇다고 GM과의 계약을 간단히 파기할 수도 없다. 자칫 어렵사리 뚫은 미국 수출길이 완전히 막힐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미국 앨라배마에 부품공장을 세운 B사 역시 인도 대신 미국을 택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최근 포드가 경영난을 이유로 하반기부터 픽업트럭 생산을 줄이기로 결정하면서 적지 않은 손실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향후 포드의 주문물량이 늘 것에 대비,신형 금형을 설치하는 등 상당한 금액을 쏟아부었지만 현 상황에선 투자원금 회수 여부가 불투명하다.



◆신차 지연·감산 잇따라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쉽게 점칠 수 없다는 점이다. 북미 자동차 '빅3' 업체인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지난달 전년대비 각각 26.1%,14.7%,28.8% 감소한 사상 최악의 판매실적을 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는 빅3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고,메릴린치는 GM의 파산 가능성까지 예고했다. 게다가 미국 경제는 유가 상승 등과 맞물려 좀처럼 회복 타이밍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들과 거래해온 국내 부품사들은 당장 철강 고무 플라스틱 등 원자재값 인상분을 납품가에 반영하기 어려워졌다. GM에 차량용 볼트를 납품하는 영신금속 관계자는 "위기에 처한 빅3가 가격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것을 꺼리는 데다 중국 등 값싼 공급처가 많아지면서 국내 부품사의 협상력도 약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신차 개발이 지연되고 감산이 잇따르는 것도 위협 요인이다. 포드에 도어모듈을 납품 중인 대기오토모티브 관계자는 "지난 3월 이후 추가적 부품공급 계약이 끊긴 상태"라며 "연간 최소 100만개 이상의 부품을 납품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새로운 차종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사의 대미 수출액은 3월 작년보다 1%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4월 -7% △5월 -11.9% △6월 -21.3%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럽에서 돌파구 찾아야

이에 따라 수출처를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고 핵심기술을 개발해 미국발(發) 위기를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차량용 배기 모듈과 도어용 레치 등을 생산하는 대기산업은 지난 19일 벤츠,BMW,아우디 등과 거래하는 독일계 자동차 부품사인 '브로제(Brose)'와 50 대 50 지분으로 합작법인인 '대기브로제'를 설립했다. 현대오토넷은 올해부터 유럽 완성차의 대표격인 메르세데스벤츠에 차량용 AV(오디오·비디오) 시스템을 납품하고 있다.

자동차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현대·기아자동차와 해외에 동반 진출한 부품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며 "중국 인도에 비해 물류비가 적게 들 뿐더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부품사라는 신뢰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럽에는 슬로바키아(13) 폴란드(5) 터키(4) 러시아(3) 체코(3) 등에 총 35개 부품사가 진출해 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