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이 거둔 성과는 가히 극찬을 하고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태극전사들은 놀라운 투지를 발휘해 금메달 13개와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해 국가별 메달 종합순위에서 7위에 오르면서 일본(금9, 은6, 동10)을 제치고 아시아 2위 자리도 8년만에 탈환했다.

특히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은 자유형 400m에서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고양시청)은 세계신기록을 번쩍 들며 정상에 올랐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종주국 미국과 영원한 라이벌 일본, 세계 최강 쿠바를 잇따라 물리치며 9전 전승으로 `퍼펙트 우승'을 차지해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한국선수단이 이번 대회에서 획득한 금 13개는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이 수확한 최다 금메달이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체육계에서는 상당한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들이 불굴의 의지와 눈물겨운 정신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일군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표선수들의 투혼에만 의지할 것인가 하는 매서운 지적도 쏟아졌던 대회였다.

스포츠가 곧바로 국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21세기 올림픽 무대에서 이번 대회 종합 1위를 차지한 주최국 중국은 중화민족의 화려한 부활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슈퍼파워' 미국은 육상 스프린트 등에서 뜻밖의 부진을 보이는 등 메달순위에서 2위로 내려앉아 자존심이 구겨졌지만 3위 러시아, 독일, 영국, 호주, 한국, 일본, 일본, 이탈리아, 우크라이나까지 상위 10강은 대다수 선진국들이 자리를 점령했다.

한반도를 반토막낸 땅덩어리에 인구 4천800만명에 불과한 한국이 G7과 사실상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인 한국 스포츠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폐막식 날 코리아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이승엽(요미우리)은 "고교팀이 60개에 불과한 한국이 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고교 야구팀 수가 4천100여개가 넘는 이웃나라 일본을 두 번씩이나 꺾었으니 정말 기적과도 같은 성과다.

비단 야구 뿐 만 아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박태환과 장미란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지 국내 토양이 기름져서 길러낸 선수들이 절대 아니다.

국내 스포츠를 총괄하는 대한체육회(KSC) 올해 예산은 1천250억원 가량이다.

주요 선진국은 체육계에 투자되는 돈이 1년 국가예산의 0.5% 수준이지만 체육회는 겨우 0.05%에도 못미친다.

쥐꼬리만한 투자로 세계 7위를 차지했다고 하면 미국과 중국, 영국, 독일 등 스포츠선진국 체육인들은 도저히 믿으려 들지 않는다.

예산 가운데 60% 가량은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 훈련비에 사용되고 나머지 직원들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쓰이다 보니 꿈나무 발굴이나 장기육성 계획은 아직도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리고 있다.

체육회 내부적으로도 이번 올림픽 준비과정은 미흡했다.

김정길 전 체육회장의 전격 사퇴로 5월 말 바통을 넘겨받은 이연택 회장은 공식 업무착수와 동시에 선수촌에 들러 선수들을 격려하고 총력 지원을 선언했지만 선수단 본부임원 선정과정에서 6개월 가까이 올림픽을 준비했던 실무 책임자 일부를 배제하고 상대적으로 업무 연관성이 떨어지는 임.직원들을 투입해 아쉬움을 남겼다.

체육회와 정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계가 원할하지 못한 점도 큰 문제다.

지난 해 공공기관 운영법안을 놓고 정부와 마찰을 빚었던 체육회는 올 해 사무총장 인선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김정길 전 체육회장이 올림픽 개막을 불과 2개월여 앞두고 중도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 스포츠를 총괄하는 기구는 엄연히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이지만 문화부는 스포츠외교력 강화를 구실로 체육인재육성재단 설립을 강행, 혼선을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후반기에는 문화부가 국제적인 추세까지 뒤집어 체육회와 KOC를 분리하는 등 인의적인 체육단체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체육인들의 심각한 반발도 예상되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처음으로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고 태극전사들이 돌아오는 날 성대한 환영행사도 준비했다.

또 주무부처인 유인촌 문화부 장관과 신재민 차관은 수시로 베이징을 오가며 선수단의 활약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체육인들 사이에는 한국 스포츠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때만 정부와 정치권의 홍보 도구로 반짝 인기를 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높다.

한국스포츠가 4년 뒤 런던에서도 세계 10강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선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 못지않게 체육은 체육인에 맡겨두는 정책의 유연함도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베이징=연합뉴스)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