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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메뉴를 고를까?'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

사람들은 사소한 일부터 인생의 행로를 바꿔 놓을 만큼 중요한 문제까지 평생 수천,수만 가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이때마다 올바른 선택,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직관을 버리고 주변의 정보를 활용해 '필요한 정보'로 가공해야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어떨까.

세계적 화학업체인 포모사플라스틱 창업자 왕융칭 회장(91)은 대만 제일의 갑부다. 왕 회장은 어려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도 제대로 다지니 못하고 일찍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열여섯 나이에 쌀가게를 열었지만 소도시인 데다 이미 30여개의 쌀가게가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밑천이 별로 없던 왕 회장이 세를 낸 곳은 외진 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점포였다. 이 때문에 찾는 손님도 거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문 닫는 일밖에 없었던 왕 회장은 몇 날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외진 골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쌀의 품질과 서비스를 높이는 방법밖엔 없다"며 나름의 묘책을 찾았다.

왕 회장의 묘안 실천은 쌀 속에 들어 있는 잔돌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당시만해도 추수한 벼를 길가에 펴놓고 말린 다음 도정을 했기 때문에 쌀에 잔돌이 많았고,밥을 짓기 위해 쌀을 일어 돌을 골라내는 불편이 있었다.

왕 회장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두 동생과 함께 밤새 쌀에 들어 있는 돌을 모두 골라내 품질 좋은 쌀을 내놓자 외진 골목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또 무거운 쌀을 직접 배달해 주는 택배서비스까지 시행했다. 배달해주면서 그 집 쌀독 크기는 어떤지,식구는 몇 명인지,식사량이 어느 정도인지,언제쯤 쌀이 떨어질 것인지 등을 일일이 살폈다. 쌀이 떨어질 때 쯤이면 미리 배달해 줬고,쌀독 청소는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외상으로 쌀을 내주는 배려도 베풀었다.

왕 회장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선택을 통해 가게를 낸지 1년 남짓만에 정미소를 차릴수 있었고,이는 훗날 대만 최고의 갑부가 되는 발판이 됐다.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혁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왕 회장의 예에서 보듯이 혁신은 큰 변화를 추구하는데서 오는 게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것 같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먼저 찾아내 실천하면 그게 바로 혁신이다. 소비자가 편리하게 밥을 지을 수 있도록 돌을 골라내고,무거운 것을 들기 힘든 노약자를 위해 직접 배달해 주며,묵은 쌀과 새 쌀이 섞이지 않도록 쌀독을 청소해 주는 서비스.이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일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왕 회장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왕 회장은 "나는 거시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두지만,세부적인 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며 "세부적인 것을 더 연구하고 개선해 2명이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으면 생산력이 2배가 되고,한 사람이 2대의 기계를 돌릴 수 있다면 생산력은 4배가 된다"고 작은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혁신활동을 엄청난 일로 생각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거창하게 플래카드를 공장 여기저기에 걸어놓고 매일 아침 함성으로 결의할 필요도 없다. 작업동선을 바꾸고,불필요한 업무를 과감히 없애고,작업공정을 개선하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많은 비용을 들여 연구개발에 전력해야 기술혁신이 이뤄지는 건 고정관념이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생산성을 높이는 왕 회장의 지혜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비전 없이 기업의 목표를 추구할수 없지만 비전이 꿈을 이뤄주진 않는다. 비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작고 세세한 일을 혁신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비전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사소한 것부터 챙기는 혁신.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