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금융위기 미국식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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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월가에서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월가 금융사의 무책임성과 탐욕이 위기를 불렀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를 중시한다고 떠들었던 월가 금융사이고 보면 욕을 한참 먹어도 싸다. 오죽하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한 정치자금 모금회에서 "월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잔뜩 술 취했고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겠는가.
하지만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처럼 금융사들이 집단적 오류를 저질렀다면 해석을 달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거나,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게 더 옳다는 얘기다. 이른바 시스템 오류고,시장의 실패다. 그렇다 보니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보기술(IT)버블,주택시장 버블을 방치해 위기의 싹을 키웠다는 지적에 대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오히려 불끈한다. 베이스턴스 사태가 터진 직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모기지 등의 증권화를 지나치게 쉽게 할 수 있도록 방치한 탓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크리스토퍼 콕스 의장은 "SEC는 권한 내에서 역할을 충실히 다해 왔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그렇다고 헨리 폴슨 재무 장관이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얘기도 들어본 적도 없다.
더 모를 일은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는 과정이다. 이미 미국 등 전 세계 금융사가 5000억달러의 자산 손실을 입었는데도 엉클샘은 느긋하기 짝이 없다. 미 재무부는 지난 3월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부문별로 나뉘어져 있는 감독체계를 통합하는 내용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재무부,FRB,SEC,OCC(통화감독청),의회 실무자들이 만나 회의를 반복하는 수준이다.
주택경기 침체로 금융시장은 계속 곤두박질치는데 입법은 언제 한단 말인가. 폴슨 장관은 차기 정부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혀 급할 게 없다는 태도다.
이렇게 신중한 이유는 뭘까. 바로 섣부른 시스템 변경이 자칫 효용성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엔론 사태 직후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02년 서둘러 도입된 샤베인스-옥슬리 법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장을 왜곡하고 기업을 미국에서 내쫓는 잘못을 하느니 돌다리를 두드리는 자세로 신중하게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뜻이다.
시장 실패를 정부가 쉽게 바로잡을 수 없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베어스턴스도 구제하고 국책모기지 회사에 대한 구제금융법안도 만든 미국이지만 시장의 잘못은 시장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믿음에는 큰 흔들림이 없다. 제이디 포스터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금융위기나 경제는 워싱턴 덕분이 아니라 시장 스스로 정상궤도를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실패로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월가와 워싱턴 정가는 '시장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초강대국의 오만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강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뉴욕 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하지만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처럼 금융사들이 집단적 오류를 저질렀다면 해석을 달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거나,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게 더 옳다는 얘기다. 이른바 시스템 오류고,시장의 실패다. 그렇다 보니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보기술(IT)버블,주택시장 버블을 방치해 위기의 싹을 키웠다는 지적에 대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오히려 불끈한다. 베이스턴스 사태가 터진 직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모기지 등의 증권화를 지나치게 쉽게 할 수 있도록 방치한 탓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크리스토퍼 콕스 의장은 "SEC는 권한 내에서 역할을 충실히 다해 왔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그렇다고 헨리 폴슨 재무 장관이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얘기도 들어본 적도 없다.
더 모를 일은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는 과정이다. 이미 미국 등 전 세계 금융사가 5000억달러의 자산 손실을 입었는데도 엉클샘은 느긋하기 짝이 없다. 미 재무부는 지난 3월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부문별로 나뉘어져 있는 감독체계를 통합하는 내용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재무부,FRB,SEC,OCC(통화감독청),의회 실무자들이 만나 회의를 반복하는 수준이다.
주택경기 침체로 금융시장은 계속 곤두박질치는데 입법은 언제 한단 말인가. 폴슨 장관은 차기 정부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혀 급할 게 없다는 태도다.
이렇게 신중한 이유는 뭘까. 바로 섣부른 시스템 변경이 자칫 효용성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엔론 사태 직후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02년 서둘러 도입된 샤베인스-옥슬리 법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장을 왜곡하고 기업을 미국에서 내쫓는 잘못을 하느니 돌다리를 두드리는 자세로 신중하게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뜻이다.
시장 실패를 정부가 쉽게 바로잡을 수 없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베어스턴스도 구제하고 국책모기지 회사에 대한 구제금융법안도 만든 미국이지만 시장의 잘못은 시장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믿음에는 큰 흔들림이 없다. 제이디 포스터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금융위기나 경제는 워싱턴 덕분이 아니라 시장 스스로 정상궤도를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실패로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월가와 워싱턴 정가는 '시장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초강대국의 오만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강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뉴욕 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