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택 <삼주SMC대표 tedhan7@gmail.com>

당신이 처음 태극 마크를 달던 날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 들뜬 표정으로 행여 구겨질세라 옷걸이에 고이 걸어 놓은 유니폼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였지요.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촌에 입촌할 때 당신의 얼굴에서 승리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새로운 도전을 향한 비장한 각오를 보았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낙엽이 뒹굴던 길가에 흰 눈이 내리면 단조로운 고된 훈련에서 벗어나고픈 유혹도 느꼈지만 당신에게는 모든 속세의 즐거움이 한낱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에 모든 것을 희생하며 수도승처럼 훈련에만 매진하는 당신을 보며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목표를 향한 당신의 빛나는 눈빛과 땀에 젖은 모습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훈련 때문에 오래간만에 만난 남자 친구로부터 작별을 통보받고 힘없이 돌아와 서툰 화장을 지우고 땀에 절은 운동복으로 갈아입던 당신의 쓸쓸한 뒷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친구들 앞에서 온통 굳은살 박인 손이 부끄러워 슬며시 식탁 밑으로 손을 감추기도 하고,온 몸이 상처투성이에 멍이 들고 부상으로 고통스러울 때에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아무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을 때 당신이 느꼈을 외로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려 옵니다.

고된 훈련이 일상이 되다 보니 남편 노릇 엄마 노릇 한번 제대로 못해 봤지만 남들이 포기할 나이에 꿈을 이룬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몸이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 마지막 힘까지 다한 도전이었기에 승리보다 더 아름다운 패배가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서 배웠습니다. 당신은 이제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겠지요.

축제의 열기가 지나간 후 승자의 영광도 패자의 절망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겠지만 2008년 여름의 당신 모습을 영원히 잊지 않으렵니다. 손이 예쁘지도 않고,햇볕에 그을려 새카만 얼굴이지만 모든 절망과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넘어서 최선을 다한 당신이기에 지난 여름 당신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승리만을 기억하고 패배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지난 16일 동안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웠기에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눈물도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하렵니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하고 기억 속의 당신 모습도 오래된 사진처럼 희미해져 가겠지만 지난 여름 아름답게 빛나던 당신의 모습을 영원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