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높은 성장세를 구가해온 대만 경제가 '차이나 리스크' 덫에 걸렸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침체 충격을 대(對)중국 수출 확대로 상쇄해온 대만 경제가 최근 중국의 경기둔화 영향으로 타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 수출이 급격히 둔화되면서 7월 수출 증가율이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3년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을 내세운 마잉주 정부 정책 아래 중국 고성장에 따른 '차이나 이펙트'를 기대해온 대만이 오히려 '차이나 리스크'의 첫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중국 흔들리니 수출에 '빨간불'

대만의 7월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5.52% 늘어난 313억600만달러에 그쳐 2003년 5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세를 보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6일 보도했다. 전달인 6월 수출 증가율(9.27%)은 물론 블룸버그통신의 예상치(7.6%)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과 홍콩으로의 수출 증가율이 전달(17.66%)에 크게 못 미치는 1.73%에 그친 탓이다. 7월 산업생산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도 1.1%에 머물러 작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둔화됐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3.22%)는 물론 6월 증가율(5.1%)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것이다.

월지는 중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취한 잇단 공장 가동 중단 조치가 아시아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9월17일까지로 예정된 장애인올림픽 기간에도 기업 규제를 유지할 방침이어서 중국발 대만 경제 위축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대만은 1분기만 해도 대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했지만 중국 및 홍콩으로의 수출은 22.1% 급증했다. 덕분에 1분기 성장률은 전문가들의 예상치(5.8%,블룸버그통신 기준)를 훨씬 웃도는 6.25%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주 발표된 2분기 성장률은 4.32%에 그쳐 정부 예상치(4.57%)를 밑돌았다. 특히 중국 경기의 경착륙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대만 경제의 차이나 리스크는 더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도 중국 효과 미미

대만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소비 부진도 한 원인이다. 대만 정부는 지난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전의 4.78%에서 4.30%로 낮추면서 수출둔화와 소비부진을 이유로 들었다. 2분기 대만 소비는 전년 동기보다 1.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국인 관광객 유입에 따른 내수 진작 효과가 아직 미미한 데다,증시침체와 물가불안이 심화된 탓이다. 대만 정부는 7월과 8월의 중국인 관광객 유입이 기대에 못 미치자 중국인 관광객 유입에 따른 성장 기여도를 당초 0.2%포인트에서 0.1%포인트로 낮췄다.

올 들어 5월까지 상승세를 보이며 9000선을 웃돌던 대만 증시의 가권지수도 7000선 밑으로 내려온 상태다. 가권지수는 이날 0.94% 하락한 6964.60에 마감했다. 올 소비자물가 전망치 역시 지난 5월 3.29%에서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3.74%로 상향 조정될 만큼 불안한 모습이다. 하지만 물가불안이 심화되더라도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돼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는 금리인상 카드는 쓰지 못할 형편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