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서만 77원가량 올랐다. 이 기간 원화가치는 달러 대비 7.63% 하락했다. 최근 원자재값 급락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캐나다달러를 제외하면 전 세계 주요국 통화 가운데 최고 수준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 엔화는 1.91% 하락에 그쳤고 태국 바트화와 싱가포르 달러 등 다른 아시아 통화도 1~3%대 하락에 그쳤다.

◆'선물환의 복수'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왜 유독 원화만 이렇게 큰 폭으로 하락했을까. 전문가들은 한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지금 원화 약세(환율 상승)는 지난해 과도한 쏠림현상에 따른 '후유증'이라고 지적한다.

작년 말 원ㆍ달러 환율이 900원대 초반에서 움직이자 국내 기업들은 앞다퉈 '환율이 더 내릴 것'이라고 베팅했다. 조선업체 등 수출업체들은 과도한 선물환 매도에 나섰고 수입업체들은 달러 매수를 최대한 늦췄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선물환 순매도금액은 전년 대비 46% 증가한 718억달러에 달했다. 중소기업들은 환율이 하락하면 이득을 보지만 환율이 상승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키코(KIKO) 등 환헤지 상품에 대거 가입했고 해외펀드는 자금이 늘어날 때마다 환헤지를 위해 달러 선물을 내다팔았다. 은행들도 환율 상승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하기보다는 '환율이 900원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이 같은 쏠림 현상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갑자기 환율이 튀어 오르면서 수입업체들이 다급해졌다. 특히 유가가 급등하면서 정유사들은 결제 자금 확보를 위해 '묻지마 달러' 매수에 나섰다. 키코에 물린 중소기업들도 환율이 오르는 바람에 계약금액의 2~3배에 달하는 달러를 비싼 가격에 되사들여 갚아야 했다.

반면 주요 달러 공급원이라 할 수 있는 조선 등 수출업체들은 손에 쥔 달러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달러는 최대한 매도를 늦추고 있다.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급하게 팔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최근 원ㆍ달러 환율 급등은 이 같은 '달러 부족'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진우 NH선물 금융공학실장은 "과거 수년간 조선 등 수출업체가 과도한 선물환 매도에 나서는 극심한 쏠림현상에 따른 달러 부족이 최근 환율 급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정부 개입은 '단기약발'

정부가 지난달 대규모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면서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원 역할을 하기는 했다. 정부 개입에 대한 경계감으로 환율이 잠시 안정세를 보이는 듯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가 계속되는 상황도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결국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 속에서 정부가 환율 방어에서 손을 떼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환율 상승을 억제하던 고삐가 풀렸다. 이후 환율은 거침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정부의 개입으로 심리적 저항선 역할을 하던 1050원이 지난 21일 무너지자마자 1060원 선,1070원 선,1080원 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업체들은 더 다급해져 달러 매수주문을 쏟아내고 수출업체는 달러 매도시기를 더 늦추게 된다. 환율 상승세가 당분간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은 오버슈팅(과열)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 상황에선 1200원 선 근처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환시장 관계자도 "정부 개입의 실패를 거론하기 전에 왜 환율이 오르는지 생각해볼 때"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환율 하락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이 지금은 환율 상승에 대한 역(逆)쏠림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