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기름값 공개 추진 논란] 업계 "영업기밀 침해… 장사하지 말란 얘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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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경제부가 정유사별로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경쟁을 유도해 판매 가격을 낮추고,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선 정유사들의 공급가격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유업계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인 가격을 노출시켜 시장 경제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정책"이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고유가시대 가격인하 불가피"
지경부는 지난해 7월부터 유통단계별 월간 실제 판매가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어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올 5월부터는 주간 가격을 발표하는 등 국내 석유제품 판매가격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 왔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공개하는 방안은 시행되지 않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정부가 이번에 '정유사별 가격 공개'라는 마지막 카드를 뽑아들고 나선 것은 정유사별 경쟁을 유발시켜 가격을 끌어내리겠다는 측면이 강하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가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는 것도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 공개를 서두르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정유사별 공급가격 공개를 위해 9월 중 '석유류 가격표시제' 등 관련법규와 고시를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법률 검토를 벌이고 있다"며 "정유사별 가격 공개가 영업비밀 침해의 범주에 속하느냐 여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한국석유공사가 매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모아 4사의 평균치만 공개하고 있다. 보통 휘발유 1ℓ에 붙는 세금은 교통에너지환경세 472원,주행세 127원,교육세 70원,부가가치세 169원 등 모두 839원이다. 여기에 정유사가 원유를 도입해 정제한 기름의 원가와 부가가치를 합치면 주유소 공급 가격이 된다. 다시 ℓ당 90원 안팎의 주유소 평균 마진을 합친 것이 소비자 가격이다. 정부가 정유사별 석유제품 공급 가격을 공개하면 세금을 뺀 정유사의 원가와 마케팅 비용,부가가치 등이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다.
정유사별 공급가격 공개는 국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유업자나 석유 수출업자의 판매 가격 보고가 의무화된다.
주유소업계도 정유사별 석유제품 가격 공개를 거들고 나섰다. 양재억 한국주유소협회 전무는 최근 공개 석상에서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결국 정유사가 가지고 있다"며 "주유소는 정유사가 얼마에 공급하느냐에 따라 일정 마진을 붙여 판매하기 때문에 정유사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美·日 등 정유사별 공급가 비공개"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업비밀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격은 승패를 좌우하는 만큼 공급가격은 가장 큰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한 정유사의 영업담당 임원은 "소비자의 알 권리나 공공이익을 중시하는 유럽과 일본에서도 정유사별 가격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개별 주유소들은 서로 정유업체별 주유소 공급 가격을 비공식적으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가격 인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며 "제품 공급 가격에는 마케팅 비용 등 기업의 영업비밀이 포함돼 논란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법률 위배를 둘러싼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국내 법률이나 판례에 비춰 가격정보는 영업비밀로서 보호받는다는 논리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공정거래법,통계법,정보공개법 등을 감안하면 기업의 수량적 정보를 통계로서 활용하거나 법인의 영업상 비밀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이 될 수 있다"며 "개별 기업의 판매가격 발표나 공개는 과점적 시장구조에서 가격동조화 현상을 유발,의도하지 않은 가격 담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정유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영업비밀이 포함된 도매가격을 공개하라는 것은 사실상 장사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정유사별 공급가격 공개는 결국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장 친화적인 경쟁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정부는 "경쟁을 유도해 판매 가격을 낮추고,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선 정유사들의 공급가격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유업계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인 가격을 노출시켜 시장 경제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정책"이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고유가시대 가격인하 불가피"
지경부는 지난해 7월부터 유통단계별 월간 실제 판매가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어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올 5월부터는 주간 가격을 발표하는 등 국내 석유제품 판매가격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 왔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공개하는 방안은 시행되지 않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정부가 이번에 '정유사별 가격 공개'라는 마지막 카드를 뽑아들고 나선 것은 정유사별 경쟁을 유발시켜 가격을 끌어내리겠다는 측면이 강하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가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는 것도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 공개를 서두르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정유사별 공급가격 공개를 위해 9월 중 '석유류 가격표시제' 등 관련법규와 고시를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법률 검토를 벌이고 있다"며 "정유사별 가격 공개가 영업비밀 침해의 범주에 속하느냐 여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한국석유공사가 매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모아 4사의 평균치만 공개하고 있다. 보통 휘발유 1ℓ에 붙는 세금은 교통에너지환경세 472원,주행세 127원,교육세 70원,부가가치세 169원 등 모두 839원이다. 여기에 정유사가 원유를 도입해 정제한 기름의 원가와 부가가치를 합치면 주유소 공급 가격이 된다. 다시 ℓ당 90원 안팎의 주유소 평균 마진을 합친 것이 소비자 가격이다. 정부가 정유사별 석유제품 공급 가격을 공개하면 세금을 뺀 정유사의 원가와 마케팅 비용,부가가치 등이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다.
정유사별 공급가격 공개는 국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유업자나 석유 수출업자의 판매 가격 보고가 의무화된다.
주유소업계도 정유사별 석유제품 가격 공개를 거들고 나섰다. 양재억 한국주유소협회 전무는 최근 공개 석상에서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결국 정유사가 가지고 있다"며 "주유소는 정유사가 얼마에 공급하느냐에 따라 일정 마진을 붙여 판매하기 때문에 정유사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美·日 등 정유사별 공급가 비공개"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업비밀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격은 승패를 좌우하는 만큼 공급가격은 가장 큰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한 정유사의 영업담당 임원은 "소비자의 알 권리나 공공이익을 중시하는 유럽과 일본에서도 정유사별 가격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개별 주유소들은 서로 정유업체별 주유소 공급 가격을 비공식적으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가격 인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며 "제품 공급 가격에는 마케팅 비용 등 기업의 영업비밀이 포함돼 논란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법률 위배를 둘러싼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국내 법률이나 판례에 비춰 가격정보는 영업비밀로서 보호받는다는 논리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공정거래법,통계법,정보공개법 등을 감안하면 기업의 수량적 정보를 통계로서 활용하거나 법인의 영업상 비밀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이 될 수 있다"며 "개별 기업의 판매가격 발표나 공개는 과점적 시장구조에서 가격동조화 현상을 유발,의도하지 않은 가격 담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정유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영업비밀이 포함된 도매가격을 공개하라는 것은 사실상 장사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정유사별 공급가격 공개는 결국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장 친화적인 경쟁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