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법제처장은 28일 밀레니엄 포럼에서 법제처 주도의 법령정비·규제개혁 필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그는 "규제개혁은 총론에는 다 찬성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부처로부터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며 "오죽하면 제가 국무회의에서 부처들이 규제개혁에 계속 반대하면 진보·보수 시민단체들과 함께 규제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겠느냐"고 말했다.

이 처장은 그러면서 "과거에도 법령정비와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소관부처에 맡겨 놓는 바람에 실패했던 것"이라며 "법제 관련 전문 능력과 중립성·독립성을 갖춘 법제처가 나서 그런 문제를 고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희택 서울대 교수=이명박 정부의 법령체계 선진화 작업이 성공한다면 국가 선진화,기업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각론 추진과정에서 나올 부처들의 반발이다. 부처를 어떻게 설득하고 공감대를 형성할지,복안이 있는지.또 법령정비의 효과는 지표로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우선적인 국정과제로 유지될지도 궁금하다.

▶이 처장=각 부처 갈등으로 규제 개혁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닌지 나도 걱정이 많다.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기 위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부처들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본다.

▶신 교수=부실입법,졸속입법 문제를 짚어볼 때가 됐다. 법령 선진화도 중요하지만 부실하거나 위헌적인 법령이 나오지 않게 사전에 예방적으로 거를 방법은 없는지.

▶이 처장=좋은 지적이다. 국회에서 포퓰리즘 법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타협에 의한 법도 헌법 위에는 있을 수 없다.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근 가축개정법 위헌소지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지만 소신있게 얘기했다. 국회의 위헌적 입법을 막기 위해 사전적으로 행정부 심의 기능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인데 위헌소지가 있으면 헌법재판소가 이를 시행 전에 빨리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기업 세무조사와 관련해 조사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무조사 기준,세무조사 절차 등을 명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처장=파주시가 이화여대 캠퍼스를 선(先) 허가하고 후(後) 검토하겠다고 해서 6시간 만에 인가했다. 이런 접근처럼 규제접근 방식을 사후 규제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한다. 기업 규제는 사후적으로 하되 이를 어길 경우 회사를 망하게 할 정도로 엄격하게 징벌하는 체계가 돼야 한다.

▶이원덕 삼성경제연구소 상근고문=부처와 지자체별로 인허가 통과시간이 천차만별이다.

▶이 처장=인허가를 언제까지 하라는 그런 규정은 없다. 인허가를 받으면 며칠 내에,민원을 받으면 며칠 내에 처리하라는 사무규정은 있지만 강제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이다. 민원처리 기간이 훈시규정으로 사문화돼 있는데 민원을 방치해 민원인에게 애를 먹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서정우 한국회계기준원장=규제완화를 위해서는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매커니즘이 필요하다. 또 이런 작업은 현 정권뿐 아니라 앞으로 50년,100년간 계속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공무원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이 처장=맞는 말이다. 규제개혁 논의가 각론으로 들어가면 각 부처들이 고유권한을 침해한다며 반발한다. 오늘자로 국민 불편부당 법령 100선을 내놨는데 민간에서 제기한 사항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 그만큼 국민들이 느끼는 불편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엉뚱한 주장도 있지만 공무원들이 그 자리에서 몇 십년 일해도 몰랐던 것이 많다. 국민불편 법률은 그렇게 해서 고쳐야 한다. 법제처 직원들에게 '고정관념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종현 부즈알렌해밀턴 대표=법이나 규율이 없어지면 이를 관장하는 조직도 함께 없어져야 한다.

▶이 처장=솔직히 말해 각 부처가 규제법령 철폐에 난색을 표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이 줄어든다는 위기감 때문이라고 본다. 법령이 폐지 및 철폐되면 관련 부처가 직제개편으로 폐지되거나 줄어들어야 하는데 그게 남아 있다가 적당한 때 새롭게 뭐하면 신설되거나 이렇게 해왔다. 이제는 법령개폐와 조직개편이 같이 가야 한다. 이를 언론이나 학계에서 더 공론화해 줬으면 한다.

▶최용선 서울시립대 교수=접대비 한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불편하다고 규제를 완화하는 게 꼭 옳은 방향인가.

▶이 처장=접대비 한도를 건드리지 말자는 의견도 많지만 시민단체들 중에는 접대비 한도를 늘리자는 데도 있다. 기업들이 50만원 이상 접대했을 경우 상대방의 실명과 접대 목적을 밝히도록 하고 있는데 정작 기업들은 우회적으로 이를 비켜가고 있고 오히려 이 규제가 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법령상 과세관청과 기업 간의 혼선을 유발하는 접대비의 범위를 보다 구체화하는 방안을 현재 기획재정부와 논의 중인 데,더 나아가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까지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라고 본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자발적으로 규제개혁하는 부처에 인센티브를 줄 방안은 없나.

▶이 처장=내부규정을 정비하는 문제는 공무원들의 과감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국민의 권리의무에 대해 규정하는 사항은 행정부처 내부규정으로 규제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나와 있다.

▶배희숙 한국여성벤처협회장=규제개혁 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면 전기통신사업법 같은 것을 고쳐야 한다. 이 법은 기존 사업자들을 보호하는 데만 치중하고 중소기업들의 신규 진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처장=그런 점 때문에 유능한 기업인들이 소송하는 것을 봤다. 기존 사업자 보호위주로 돼 있어 법을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된다고 본다.

박수진 기자/정원하 인턴(한국외대)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