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목을 매는 트렌드 세터와 맛난 먹거리라면 천리길도 마다않는 미식가들의 세계는 흥미롭게도 닮은 점이 많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앞다퉈 국내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 구찌,페라가모 등 이탈리아 브랜드나 켈빈클라인 같은 미국 브랜드가 인기를 얻었듯이 요식업계 또한 1990년대 'T.G.I. Friday'나 '베니건스' 등 미국에서 온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이탈리안 레스토랑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최근 패션계의 무게 중심이 밀라노에서 다시 파리로 회귀한 것처럼 요식업계 또한 점차 캐주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보단 격조 높은 프랑스 요리점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이제 진정한 패션 리더는 결코 브랜드의 이름값에 혹해 자신의 지갑을 열지 않는다. 정작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누가 이것을 만들었느냐' 즉,디자이너에 관한 문제다. 같은 브랜드라도 수석 디자이너에 따라 그 스타일과 느낌이 확 달라지기 때문.

한 예로 남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디올 옴므(Dior Homme)는 수석 디자이너였던 에디 슬리먼 체제 아래에선 과도하게 타이트한 실루엣을 선보였지만 현재 디자이너인 크리스 반 아쉐는 한결 넉넉하고 자연스러운 옷들로 막강했던 전임자의 색채를 지워가고 있다. 이렇게 패션계에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불리우는 디자이너들의 입김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미식가,특히 까다로운 프랑스 요리에 심취한 마니아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미식가라고 자부하는 이들은 마치 패션 리더들처럼 브랜드(레스토랑)보다 디자이너(셰프)를 선정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여긴다.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을 배출한 '세인트 마틴'처럼 유명한 프렌치 요리 스쿨로는 영화 '라따뚜이'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한층 명성이 높아진 '르 코르동 블루'를 꼽을 수 있다. 르 코르동 블루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본교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 분교를 두고 있으며,프랑스 요리와 제과 과정으로 이름 높은 셰프 스쿨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숙명여대가 르 코르동 블루 아카데미 과정을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르 코르동 블루를 졸업한 셰프가 서울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을 순례해 볼까. 우선 추천할 수 있는 곳은 방배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라 사브어(La Saveur)'다. 청담동의 '팔레 드 고몽(Palais De Gaumont)'처럼 으리으리한 프렌치 레스토랑을 상상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것이다. 대신 "저희 집의 고객은 90%가 단골입니다. 그래서 셰프와 손님이 마치 오랜 친구 사이 같아요. 요리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저를 불러 물어볼 수 있죠"라고 말하는 진경수 셰프의 전언처럼 인간적인 소통이 있어 더 정감이 가는 곳이다. 모든 음식이 훌륭하지만 특히 한우 안심 스테이크는 '잇몸만으로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연하고 부드럽다. 또 다른 집으로는 이태원 초입에 있는 '봉 에 보(Bon Et Beau)'가 있다. 밝은 실내와 야외 테라스가 특히 인상적인 이곳의 메뉴는 다소 캐주얼해 한적한 주말의 오후를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하루에 세 팀만 예약을 받기 때문에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프렌치 레스토랑인 스웰(Swell)이나 서승호 같은 스타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고 있는 이태원의 '서승호',한옥을 개조해 만든 프렌치 비스트로인 삼청동의 '쉐 시몽(Chez Simon)' 등도 기억해둘 만한 프랑스 레스토랑들이다.

르 코르동 블루 출신으로 특급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셰프는 웨스틴 조선의 뷔페 레스토랑 '아리아'와 델리 레스토랑 '베키아 에 누보'의 조리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재천 셰프,브런치로 유명한 파크 하얏트 '코너스톤'의 김지수씨 등이 있다.

'요리사를 따라 레스토랑을 옮겨 다닌다?'아직은 일부 미식가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얘기다. 그렇지만 이를 실천하다 보면 당신의 미적 감각과 삶의 질은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평생 한 명의 재단사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맡기고 주치의에게 몸을 의탁하듯 자신의 오감을 최고로 만족시켜 주는 셰프가 만들어주는 산해진미를 즐겨보자.

김현태 월간 '하퍼스 바자' 패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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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1 국내파 요리사도 있다

해외 유명 요리스쿨을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훌륭한 조리장이 된 국내파 셰프들도 있다. 그동안 외국인 셰프들이 독차지했던 특급 호텔의 총 주방장자리를 최초로 차지한 밀레니엄 힐튼의 박효남 셰프처럼.그는 해외 유명학교에서 수학하는 대신 호텔 주방장 보조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지만,이제는 국내 미식가들에게 최고 요리사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디자이너 정욱준이 준지라는 이름으로 파리컬렉션에서 주목받고,한상혁이 우리나라 패션 피플들의 지지를 받듯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매혹적인 요리를 만드는 셰프가 될 수 있다.


TIP2 프랑스 요리 기본 에티켓

아무리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들이 퓨전 형태를 띠고 있어 까다로운 절차는 생략하는 추세지만 아래와 같은 규칙과 예절은 알아둬서 나쁠 게 없다.원래 가까운 사람끼리도 격식은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1.수프를 먹을 때 접시는 앞쪽이 아니라 뒤쪽으로 기울여 먹어야 한다.
2.절대로 쩝쩝, 후루룩 소리를 내선 안 된다.
3.야채샐러드를 먹을 때는 나이프를 쓰지 말고 포크로만 먹어야 한다.
4.생선요리를 먹을 때는 뒤집어먹지 말고 한쪽을 먹은 후에 뼈를 들어내고 계속 먹어야한다.
5.주위에 허락 없이 닭고기를 손에 잡고 먹으면 안 된다.
6.식사 도중 두 팔을 항상 식탁에 올라와있어야 한다.
7.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 셰프나 호스트에게 큰 결례일 수 있다.
8.자기 손으로 음식을 덜어서는 안 된다.


TIP3 주요 레스토랑 연락처

라사브어(LA SAVEUR) 서초구 반포4동 76-1 B1 (02-591-6713)
봉 에 보(BON ET BEAU) 용산구 한남동 대사관길 686-1 제일기획 옆 (02-749-4358)
레스쁘아(L'Eespoir) 청담역 6번 출구에서 상아아파트 3동 건너편 골목 스타벅스 맞은편(02-517-6034)
스웰(Swell) 청담동 난타극장 맞은 편 골목 백곰빌딩 4층 (02-544-2385)
쉐시몽(Chez Simon) 삼청동 우리은행 맞은편 쿡켄하임 골목 맨 끝 집 (02-730-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