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벌써 석 달째 제자리 걸음이다. 예년 같으면 늦어도 7월 말 여름휴가 전 대개 협상이 끝난다. 조합원들도 협상타결축하금 등 두둑한 주머니로 휴가를 떠난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금속노조의 정치파업,현대차 임금파업 등 이중 삼중의 파업에 내몰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장이 서는 바람에 조합원들의 월급봉투는 많이 얇아졌다. 이런 식이라면 추석 전에도 협상을 끝내기 힘들 것 같다. 불경기 속 조합원들은 그 어느해보다 썰렁한 한가위를 맞아야할지도 모른다.

올 협상이 이처럼 난항을 겪는 것은 무엇보다 윤해모 지부장(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집행부의 책임이 크다. 노사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어렵게 마련한 합의안에 대해 노조가 손바닥 뒤집 듯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올 임금협상의 최대 이슈인 근무교대제와 관련,노사 양측은 '8+9시간 근무안(오전 8시간,오후 9시간 근무)'에 대해 잠정 합의했었다.

하지만 일부 강성파 조직이 이 합의안에 반대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강성파들은 노조 측의 당초 요구안인 '8+8시간 근무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라며 집행부를 흔들어댔다. 노사 합의안이 마음에 안 들면 찬반투표를 통해 부결시키면 될 일인데도 이 절차는 무시한 채 협상장까지 봉쇄하는 무력도 서슴지 않았다. 일부 강성파 조직의 생떼에 한동안 끌려다닌 집행부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노조는 회사 측에 '8+8시간 근무안'을 놓고 다시 협상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치의 양보없이 모두 갖겠다는 게 노조의 생각이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파업을 밥먹듯 벌이며 회사 측을 몰아세우고 있다. 1987년 이후 21년간 354일의 파업으로 회사 측에 11조2200여억원(회사 측 추산)의 손실을 끼친 것도 모자라다는 듯한 태도다.

회사 측은 노노갈등 때문에 협상이 안개 속으로 빠져들자 할 말을 잃었다. 노사간 신뢰에 엄청난 금이 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노사는 신뢰를 먹고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노조는 이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일반 조합원들과 시민들은 금속노조 홈페이지 등에서 현 집행부의 리더십 부재와 우유부단함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아이디 '현대차'는 "현 집행부가 그렇게 힘이 없어서… 어떻게 (강성) 대의원 몇 명에게 저지당하고 한심한 집행부"라고 꼬집었다. 아이디 '마당발'은 "올 임금협상을 하는 것을 보면 속이 터진다. 조합원은 안중에도 없고… 조직의 힘에 이리갔다 저리갔다 헤매고 있으니 올 한 해가 벌써 다 가는데 파업파업 하고 있으니 멍드는 건 조합원들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디 '현대인'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지부장 자리 내놓고 생산현장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생산현장의 민심은 이미 현 집행부에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이제 더 늦기 전 윤 지부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지난해 사상 첫 무파업 협상을 이끌어낸 현 집행부를 연임시켜준 대다수 조합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윤 지부장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일부 강성파 조직의 눈치를 살피며 이들에게 휘둘려서는 결코 안 된다. 윤 지부장 뒤에는 조속한 협상타결을 갈망하는 훨씬 많은 수의 조합원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 오전 예정된 노사협상에서 윤 지부장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김수찬 사회부장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