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할복으로 종교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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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낮 12시40분쯤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오대산 상원사 주지를 지낸 삼보 스님이 정부의 종교차별에 항의하며 자신의 배를 흉기로 그었다. 삼보 스님은 이날 '이명박 정권은 불교탄압 중단하라'는 혈서를 쓴 뒤 갑자기 할복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그의 이런 돌출 행동은 주변의 안타까움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종교편향,종교차별에 대한 대정부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불교계에선 진작부터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범불교도대회를 앞두고 손가락을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소지(燒指)공양,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 공양,심지어 분신을 뜻하는 소신(燒身)공양을 할지도 모른다는 '설(說)'이 난무했다. 딸린 '식솔'이 없는 독신 수행자들이라 "이 한 몸 바쳐 불교를 지키겠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불교계는 노심초사했다. 1986년 가야산 해인사에서 열린 승려대회에서 한 스님이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손가락 4개를 자른 전례도 있는 데다 이 같은 극단적 행동은 불교계의 본래 취지를 흐리고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보 스님이 지난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범불교도대회 당일 할복하겠다는 것을 조계종 총무원이 말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삼보 스님의 할복 소식을 접한 불교신자들은 "결연한 '호법(護法)의지는 받아들이지만 방법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런 식의 극단적 행동은 오히려 불교계의 주장에 대해 동정하거나 공감했던 사람들의 마음마저 상하게 하고 등을 돌리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법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참 뜻은 진리와 깨달음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노력한다는 뜻이지 내 몸을 일부러 상하면서 주장을 관철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자신에 대한 폭력도 폭력일 뿐이며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평화를 성취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종교편향ㆍ종교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 '핏빛 행동'을 한다면 불교계가 주장하는 종교화합과 국민통합,생명평화의 세계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서화동 문화부 기자 fireboy@hankyung.com
종교편향,종교차별에 대한 대정부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불교계에선 진작부터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범불교도대회를 앞두고 손가락을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소지(燒指)공양,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 공양,심지어 분신을 뜻하는 소신(燒身)공양을 할지도 모른다는 '설(說)'이 난무했다. 딸린 '식솔'이 없는 독신 수행자들이라 "이 한 몸 바쳐 불교를 지키겠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불교계는 노심초사했다. 1986년 가야산 해인사에서 열린 승려대회에서 한 스님이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손가락 4개를 자른 전례도 있는 데다 이 같은 극단적 행동은 불교계의 본래 취지를 흐리고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보 스님이 지난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범불교도대회 당일 할복하겠다는 것을 조계종 총무원이 말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삼보 스님의 할복 소식을 접한 불교신자들은 "결연한 '호법(護法)의지는 받아들이지만 방법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런 식의 극단적 행동은 오히려 불교계의 주장에 대해 동정하거나 공감했던 사람들의 마음마저 상하게 하고 등을 돌리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법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참 뜻은 진리와 깨달음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노력한다는 뜻이지 내 몸을 일부러 상하면서 주장을 관철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자신에 대한 폭력도 폭력일 뿐이며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평화를 성취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종교편향ㆍ종교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 '핏빛 행동'을 한다면 불교계가 주장하는 종교화합과 국민통합,생명평화의 세계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서화동 문화부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