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지도자 탁신, 독선적 스타일…부패로 몰락
탁신 전 태국 총리는 '성공한 CEO(최고경영자) 대통령'에서 '부패 지도자'로 몰락한 영욕의 정치인이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기업가로 사업 수완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태국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도 있지만,독선적인 통치 스타일로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다.

1949년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비단 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찰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대 경찰 인맥을 기반으로 1980년대 '친(Shin) 그룹'을 출범시켰다. 친 그룹은 이동통신 독점사업권을 따낸 뒤 컴퓨터와 케이블TV 시장을 차례로 석권하는 등 급성장했다.

탁신은 1994년 외무장관에 발탁됐고 두 차례 부총리를 지낸 뒤 1998년 '타이 락 타이'(TRTㆍ태국은 태국을 사랑한다는 뜻) 당을 창당했다. TRT는 창당 3년 만인 2001년 태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 의석 과반수를 장악했고,총리직에 오른 그는 의료비 감면과 부채 탕감 정책 등으로 농촌지역과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그의 집권 후 태국 경제는 1990년대 말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고속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CEO식 국정운영과 경제를 우선하는 '탁시노믹스' 정책은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대중과 영합하는 인기 정책으로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CEO 총리'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회사였다. 2006년 1월 그의 일가가 회사 주식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에 19억달러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의 분노를 샀고,결국 그해 4월 사임을 발표했다. 이후 한달반 만에 슬그머니 총리직에 복귀했으나 2006년 9월 미국 뉴욕을 방문하던 중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돼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탁신 계열 인사들이 창당한 신당 '국민의 힘'(PPP)이 승리를 거둬 의회와 정부 내 요직을 탁신계가 장악하면서 올 2월 금의환향했다. 하지만 재직 시절 실시한 복권사업과 미얀마에 대한 차관 제공,국유지 불법 매입 등과 관련,줄소송에 직면해 징역형을 면키 어려운 처지에 빠지자 다시 영국으로 망명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