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일 오후 2시 이마트 양재점.멸치 김 굴비 등을 파는 수산물 코너는 고객들로 북적거렸지만 한우 등 정육세트 매장에는 한산했다. 매장 관계자는 "값 비싼 정육세트 대신 저렴한 멸치나 김 등 수산물을 사가는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추석이 다가왔지만 좀처럼 대목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재래시장에서는 그나마 명절 특수를 누리던 제수용품이나 의류마저 수요가 사라진 상황이다. 추석선물 판매에 들어간 대형마트 매장에는 생활물가 급등으로 '자린고비형' 소비자들이 늘면서 저가 선물 코너만 북적대고 있다.
◆시장통 박카스ㆍ커피도 안 팔려
지난 30일 오후 2시 동대문 평화시장 상가와 거리는 한산했다. 상점 주인 10명 중 4~5명은 앉거나 누워 TV를 보고 있고 주인이 자리를 비운 점포들도 눈에 띄었다. 이 곳에서 15년째 커피를 팔고 있다는 한 할머니는 "해마다 추석 전 이맘 때면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요즘은 손놓고 있는 상인이 많아 커피 팔 맛도 안 난다"고 푸념했다.
남대문시장 대도상가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김모씨는 "간혹 사람들이 '옷이 곱다'고 칭찬하면서도 사라고 하면 '돈 없다'고 가버린다"며 "작년 추석대목에는 하루 10벌은 팔았는데 오늘은 아직 개시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상가 관리인인 최 모씨는 "추석이 지난해보다 열흘가량 빨라진 것도 악재"라며 "지난해 짭짤한 재미를 봤던 아동복 매장들이 여전히 더운 날씨로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닐봉투를 판매하는 남문포장의 이모 사장은 "지난해에는 추석을 앞두고 15~20명의 지방상인들이 20만원어치씩 비닐봉투를 구매해 갔는데 올해는 10명 정도로 수가 줄었다"며 "구매액도 10만원 안팎으로 내려갔다"고 밝혔다.
지난 29일 '5일장'이 열린 성남 모란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대추를 판매하는 박모씨는 "작년 이맘 때 하루에 대추 한 짝(14㎏)은 팔았는데 지금은 석 되(3㎏) 팔면 잘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약국의 이윤심 약사(60)는 "지난해 추석은 그나마 경기가 괜찮아 박카스가 손님 접대용으로 하루 세 박스씩 나갔는데 올해는 2~3일에 한 박스 팔리는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재래시장의 썰렁한 경기는 인근 금융회사 예금액과 대출 실적에서도 확인됐다. 외환은행 남대문지점의 박찬욱 차장은 "150여개 상점에서 받는 '파출수납'의 예금액이 지난해 추석 시즌에는 하루 1억2000만원에 달했는데 요즘엔 역대 최저인 9000만원까지 떨어졌다"며 "일반적으로 상인들이 추석을 앞두고 물량확보 자금으로 대출을 신청하는데 올해는 아직까지 문의 상담조차 없다"고 전했다.
◆값비싼 정육ㆍ한과세트는 외면
경기도 분당에 사는 주부 최모씨(38)는 선물세트를 알아보러 31일 인근 대형마트를 찾았지만 오른 물가에 놀라 선물예산을 대폭 낮췄다. 최씨는 지난해에는 시댁 및 친정 부모님께 현금 20만원과 옷,지인들에게는 7만원대 과일세트를 선물했는데 올해는 부모님께는 현금만,지인들에게는 3만원대 커피세트를 돌리기로 했다. 그는 "물가도 뛰고 금리도 올라 지갑 열기가 쉽지 않다"며 "주위에서도 추석선물을 간소화하는 주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9일부터 추석 선물세트를 진열하고 본격 판매에 들어간 대형마트 매장에는 최씨처럼 가격이 저렴한 선물을 알아보려는 소비자들로 북적거렸다. 이에 따라 한우 정육세트나 고급 한과세트 매장은 한산한 반면 생활용품과 수산물,가공식품 매장에는 고객들이 몰렸다. 와인 매장에도 저렴한 와인을 찾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30일 오후 6시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을 찾은 박우정씨(38)는 "추석선물 비용을 작년보다 절반 정도 줄여 3만~4만원대 와인을 6병 정도 구입하려고 했는데 싸고 인기 있는 와인들은 이미 다 팔려 두 병밖에 못샀다"고 말했다.
장성호/최진석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