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음식료 업체들의 경영여건은 상반기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세를 멈추고 안정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곡물값만 안정화된다면 그동안 진행된 제품값 인상 효과로 실적 개선 폭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최근 급등한 환율은 변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물가 상승, 음식료 업체 영향은?

물가 상승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지만, 필수소비재인 음식료품 매출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달 말 밝힌 '유가급등에 대한 가계의식 조사' 결과, 조사대상 가구의 61.1%가 유가 상승으로 소비와 지출을 줄였지만 식료품비 지출을 줄였다는 응답은 5.4%에 그쳤다.

또 향후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더라도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없는 항목으로 식료품비를 답한 응답자도 43.9%에 달했다.

차재헌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물가 상승으로 음식료 업체들의 제품 출하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라며 "외식비와 교통비를 줄이면 상대적으로 필수소비재들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정부 압박이 주가 발목 잡을까?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소재 업체를 제외한 음식료 업체들의 제품 가격은 인하될 가능성이 낮아 실적과 주가에 끼치는 영향도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제분업체 등 소재업체들의 경우는 통상 일정 수준의 원재료 가격 변동에 따라 가격을 변경한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김진수 CJ제일제당 대표이사 등 식품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최근 유가와 국제 곡물가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식품업계도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1차관도 "밀가루 가격이 내려감에 따라 관련 업체들이 라면, 빵 등 서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을 인하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지난달 5일 열린 물가 및 민생안정 차관회의에서 밝힌 바 있다.

음식료 업체들은 그동안 가격 인상분이 원자재 가격 부담을 상쇄하기에는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현재 가격 인하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농심 관계자는 "지난 2월 라면가격을 평균 11.4%(약 100원) 인상했는데, 원래 200원정도 올려야 할 것을 내부적인 원가 절감 등으로 인상 폭을 줄인 것"이라며 "현재로는 가격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롯데제과 측도 "지난해 말부터 8월까지 전체 제품 가운데 약 80%에 대해 최대 40%까지 가격을 인상했지만, 이는 원재료가 상승의 80% 정도만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자현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물가 안정 압박이 단기적인 투자심리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도 "과거 사례를 보면 업체들이 제품값 인하를 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정부의 물가 압박이 실적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추가적인 가격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희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반적인 가공식품의 소비자 가격은 원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하더라도 추가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들어 음식료 품목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생산자 물가 상승률을 훨씬 하회했다"고 지적했다.

◇ 곡물값 급등은 멈췄지만..환율이 변수

지난해부터 이어져오던 국제 곡물가격 급등세가 일단 멈춰선 것으로 보인다. 곡물 가격 안정은 제품값 인상 효과와 함께 업체들의 실적 개선에 힘을 실어줄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지만 최근 급등하고 있는 환율이 주가 발목을 잡을까 우려된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제 곡물 가격은 유가 상승과 미국 중서부 지역 홍수 피해가 있었던 지난 5∼6월 최고치를 보인 후 최근에는 미국의 양호해진 기상조건과 유가 하락 등으로 최고치 대비 25∼34% 하락했다.

유통공사는 쌀, 대두,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류 생산량이 증가하고, 내년까지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곡물 가격이 안정되면 그동안 음식료 업체들이 단행한 가격 인상 효과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업체들은 올해 원가 상승을 이유로 주요 제품의 가격을 평균 10~20% 인상했다. 품목별로 라면 12%, 제과 17%, 아이스크림 40% 가량이다. 또 낙농가의 원유(原乳) 가격 인상으로 유제품들의 가격 인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곡물 가격 하락으로 4분기 말부터 원가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음식료주에 대해 3분기 비중확대 의견을 제시한다"며 "하반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개선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백운목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도 "최근 원재료 가격이 고점을 찍고 떨어져 음식료 업체들의 내년 상반기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곡물가격이 하향 안정화 됐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지적과 부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지기창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곡물가격은 지난 7월 평균 30% 가량 급락했다가 다시 반등하는 움직임을 보여 하향 안정화 여부에 대해서는 한 두달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상반기 원가에 반영된 곡물가격 수준보다 하반기 원가 반영분의 평균 가격이 더 높아져 있다는 점이 우려되고, 중간재 성격의 각종 부자재 가격 또한 추가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급등하고 있는 환율에 주목해야 할 듯 하다. 환율이 상승하면 업체들의 곡물 수입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백운목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930원에서 최근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데, 1100원대 위에서는 음식료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며 "음식료주 주가는 지난 3월 환율 상승으로 하락한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은 1일 3원 오른 1092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장중 1100원을 돌파했다.

◇ 장바구니에 뭘 골라 담을까?

전문가들은 원재료 가격 부담과 환율 상승 등 불확실성을 고려해 차별화된 이익모멘텀을 갖춘 업체들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KT&G의 경우 현재 현재 이익 소각을 위한 자사주 매입이 진행 중이고, 환율 상승 시 수출 제품 가격 상승이 호재로 작용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추천받았다.

오리온은 중국 등 해외제과 부문의 성장세가 돋보이고, 외화 부채가 없어 환율 상승 영향이 낮다는 평가다.

이정기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오리온의 국내 과자류 가격 인상으로 3분기에는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해외 제과 부문의 수익성 개선 역시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이트맥주의 경우 기업 분할 효과와 함께 맥주 가격 인상 및 출하량 증가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오뚜기는 제품가격 인상에 따른 수요 감소를 독보적인 시장 지배력으로 상쇄할 것이라는 평가다. 지기창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마요네즈, 케첩 등에서 오뚜기의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른다"며 "독보적인 시장 지위가 매력적"이라고 호평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