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질서가 국가경쟁력이다] 불법시위에 '원칙대응'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쇠파이프를 든 채 밤새 시위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보도됐는데 누가 한국에 투자하려고 하겠습니까. "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단호했다. 불법시위를 마냥 방치했다가는 민생치안도 엉망이 되고 경제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소신이 뚜렷했다. "촛불시위가 계속되다 보니 계산할 수 없는 피해가 엄청나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런 소신의 발로인듯했다. 김 청장은 "초창기 촛불집회 참여자들과 달리 지금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가 아닌 다른 데 목적이 있었던 세력"이라며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촛불시위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지난 7월 서울지방경찰청 수장으로 임명된 김 청장을 1일 종로구 내자동길 청사 내 집무실에서 만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촛불집회가 사실상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속불은 남아 있다고 본다. 겉으론 진정된 것 같지만 지금도 주말이면 소수의 사람들이 시위를 벌인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시위꾼들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한다기 보다는 다른 데 목적이 있다. 정부 정책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도심도로를 밤새도록 점거하고,제지하는 경찰에 쇠파이프로 맞서고 경찰버스를 부숴 버린다.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들은 발본색원해야 한다. "

-촛불시위를 초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처음에는 시위대가 5만명,8만명가량 모였다. 그 정도 사람들이 모이면 사실 경찰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 취임했을 때 의경이 시위대에 끌려가 옷이 벗겨지고 짓밟힌 사건이 터졌다. 경찰이 두들겨 맞는 일도 허다했다. 그래서 물대포,색소,사복경찰부대 등을 대거 투입해 검거했다. 그렇게 하니 시위대가 점차 위축됐다. 이제는 경찰을 폭행하면 반드시 검거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게릴라 시위를 벌이다가도 경찰이 나타나면 다 도망간다. "

-지난 7월 서울지방청장으로 부임하면서 경찰이 강경대응으로 바뀌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찰이 시위대에 맞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언제까지 촛불시위에만 매달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모든 경찰이 촛불에만 매달려 있으면 민생치안은 누가 지킬 것인가. 이제는 민생치안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골목 구석구석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달려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본다. 국민이 걱정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기업들이 안심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안정된 치안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경찰의 임무다. 경찰 본연의 역할을 하기로 선언하고 방향을 돌렸을 뿐이다. "

-경찰 내 대표적인 일본통인데 일본의 시위는 우리와 어떻게 다른 것으로 보는지.

"일본에도 집회시위가 많다. 노동절 같은 때는 수만명이 모이기도 한다. 그래도 질서가 정연하다. 행진도 미리 신고한 대로만 하고 법을 철저히 지킨다. 경찰은 차선확보 등 질서유지 차원에서 그냥 동행하기만 하면 되는 정도다. 물론 일본에도 2차대전 이후 혼란기가 있었다. 학생운동이 극심할 때는 일본 경찰들도 부상을 많이 당했다. 혼란기가 끝난 게 1970년대 초반이다. 그 이후로 30년 동안 평화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

-촛불시위로 피해를 본 상인들이 속출하면서 법질서를 확립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데.

"시위대가 서울 도심도로를 점거하고 쇠파이프를 든 채 밤새 시위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보도됐다. 이를 보고 누가 한국에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실제 피해액도 상당하지만 계산할 수 없는 피해도 엄청 나다. 법질서가 확립되지 않으면 경제도 안된다. 외국인이 투자하기를 꺼리고 관광객도 불안해 하면 경제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

-법질서 확립을 위해선 경찰의 사기진작대책이나 투자 확대가 필요한 것 아닌가.

"동감이다. 법질서 확립을 위해 최일선에 서 있는 조직이 경찰이다. 그런데도 경찰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경찰을 사회간접자본(SOC) 개념으로 보고 투자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정부 예산을 일괄 삭감하면서도 경찰인력을 증원한 사례가 있다. 치안이라는 것은 공기와 같아서 평상시에는 고마움을 모르지만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

-촛불시위 진압을 하지 못하겠다고 양심선언한 의경도 나왔는데 분위기는 어떤가.

"전ㆍ의경들 정신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1만여명에 이르는 대원들이 대부분 양심선언한 이모 의경과 비슷한 나이다. 시위 현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정당한가에 대해 갈등을 느끼면 시위를 막지 못한다. 그래서 전 대원에게 직접 얘기했다. '법질서 확립을 위한 여러분들의 역할은 정당성이 있는 일이다.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여러분들은 미래 선진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그러기 위해서는 법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도 전경 출신으로 전ㆍ의경들의 선배임을 밝혔다. "

-경찰이 연루된 부패사건들이 간혹 발생하면서 경찰에 대한 불신도 여전히 남아 있는데.

"직원들에게 경찰조직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을 우리 스스로가 절대 용서하지 말자고 얘기한다. 비리가 있으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조사 처벌하라고 지시한다. 이것 저것 따져서 미온적으로 대처하면 결국 우리 경찰이 다 죽게 된다. "

-지난 4월부터 한국경제신문과 경찰청이 '기초질서가 국가경쟁력이다'라는 공동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법질서 확립은 경찰만 나선다고 되는 게 아니고 사회 각 부문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제 시작인 만큼 좀 더 긴 안목으로 기초질서지키기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

김병일/박민제 기자 kbi@hankyung.com

[약력] △경북 영일 출생(54) △영남대 행정학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공안행정학과 졸업 △경찰간부후보생 제27기 △경북경찰청장 △대구경찰청장 △경찰종합학교장 △경찰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