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인쇄용지업체인 한솔제지가 3위인 이엔페이퍼를 600억원대에 인수ㆍ합병(M&A)했다. 이로 인해 업계의 지각변동이 이뤄지면서 무한 경쟁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계성(남한)제지 홍원제지를 포함해 6사였던 인쇄용지업체가 한솔,무림페이퍼,한국제지 등 '빅3' 체체로 사실상 재편됐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3강 체제가 굳어지면서 생산 물량 감축으로 고질적 내수공급 과잉 상태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칫 자존심을 건 경쟁이 벌어지면 가격 인하 등 출혈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한솔,글로벌 업체 발판 마련

한솔제지는 이엔페이퍼의 최대주주인 국일제지와 이엔페이퍼의 인쇄용지사업(연산 52만t)인 신탄진 진주 오산 등 3개 공장을 인수키로 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1일 체결했다. 한솔제지는 향후 실사를 거쳐 오는 10월 중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한솔제지와 국일제지는 이날 인수금액과 지분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솔제지는 이엔페이퍼의 주주들인 국일제지(27.51%),신한은행(11.76%),아람파이낸셜서비스(10.93%)의 지분을 인수하고 인쇄용지부문의 가치 평가,경영권 프리미엄,일부 부채 인수 등을 감안해 600억원대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한솔제지의 생산능력은 연산 75만t에서 127만t 규모로 늘어나 인쇄용지부문에서 세계 14위권,아시아 4위권으로 올라서게 됐다.

업계에서는 한솔제지가 외환위기 이후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지속적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안정시켰다는 자신감에 따라 본격적인 공격경영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선우영석 한솔제지 대표는 "이번 인수합병은 국내시장의 공급 과잉 해소 및 대형화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초우량 글로벌 제지 기업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한솔제지는 양사가 각각의 장점을 활용해 생산지종 다양화 및 품질개선,통합 물류와 구매 등 최적의 경영효율화를 통해 약 300억원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공급과잉 해소 vs 무한경쟁 예고

한솔제지가 이엔페이퍼를 인수한 배경에는 무림페이퍼가 지난 4월 동해펄프를 인수함에 따라 자칫 업계 정상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림페이퍼는 2010년까지 동해펄프에 연산 50만t규모의 제지일관화 공장을 세워 100만t 체제로 업계 수위에 올라서겠다고 밝혀왔다. 무림은 또 2010년 이후 동해펄프에 추가 증설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두 업체 간 자존심을 건 1위 싸움이 격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솔제지가 이엔페이퍼를 인수함에 따라 인쇄용지업계는 한솔 무림 한국 등 3강체제로 재편돼 자발적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면서도 "자칫 몸집 불리기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경우 시장혼탁 양상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업계는 한솔제지가 인수한 공장 가운데 오산 진주공장은 설비가 노후돼 어떤 식으로든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그동안 계성제지 이엔페이퍼가 일부 공장을 폐쇄하는 구조조정을 했으나 공급 과잉이 크게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솔제지는 이엔페이퍼가 독립경영을 하게 되며 직원들의 고용도 승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