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붐을 이루던 유통ㆍ소비재 업체들의 대형 인수ㆍ합병(M&A)이 최근 들어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일부 유통업체나 식품ㆍ화장품 업체들의 매각설이 자취를 감췄고 성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던 M&A 협상도 답보 상태다. 내수시장이 포화 상태인 데다 신규 사업 진출 비용이 커지면서 M&A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수단으로 각광받았지만,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당분간 '큰 거래'가 이뤄지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M&A 협상 잇단 제동

상반기 내내 매각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기린(제빵ㆍ제과),더페이스샵(화장품),바이더웨이(편의점) 등의 매각 작업이 난기류에 빠졌다. 경기 부진에다 부실한 재무구조,매각금액 이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베이커리(뚜레주르)에 이어 양산빵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지난 7월 말 기린의 대주주 지분(27.86%)을 370억원 선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주회사인 ㈜CJ가 기린의 부채 과다 등을 지적하고 있어 현재로선 인수 여부가 불투명하다. 기린 관계자는 "CJ 측이 구체적인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아 매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매각설이 파다했던 바이더웨이와 더페이스샵의 '주인 찾기'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바이더웨이의 경우 롯데 계열 세븐일레븐에 팔린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기존 점주들의 반발과 상권 중복 문제,매각 금액(3000억원 요구) 이견 등으로 진전이 없다. 더페이스샵도 최대주주인 어피니티이쿼티파트너스(지분 70%)가 4000억원 이상을 요구,인수 의사를 보였던 칼라일과의 협상이 결렬됐다.

매각 대상 기업들이 새 주인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내년에도 경기 전망이 불투명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매각 작업이 지체될수록 대상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 매각설이 나돈 기업들은 직원들의 동요로 인해 영업 활동에 적지 않은 지장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매각 대상 기업들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시장 신뢰를 잃을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심사도 넘어야 할 산

홈플러스가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 홈에버를 지난 5월 2조3000억원에 인수키로 계약을 맺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라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공정위가 신세계의 월마트 인수 때 적용했던 독과점 판정 기준(서울ㆍ수도권 반경 5㎞,지방은 10㎞ 이내 상위 1개사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거나 3개사의 점유율이 75%를 넘는 경우)을 적용하면 홈플러스는 홈에버의 35개 점포 중 일부를 처분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중복 점포수가 10개 안팎으로 예상돼 이마트와 한판 승부를 벌이려는 홈플러스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이베이도 G마켓 인수에 앞서 지난 6월 공정위에 기업결합 사전심사를 청구했다. 이베이는 이미 국내 오픈마켓 2위인 옥션의 대주주(지분 99%)여서 1위 업체인 G마켓까지 인수할 경우 국내 오픈마켓의 80%를 장악하게 된다. 공정위가 독과점 판정 기준인 시장 범위를 전자상거래 시장 전체로 보면 인수가 가능하지만,오픈마켓으로 한정하면 인수가 어려워진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