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박람회(엑스포)에 다녀왔다. 사라고사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중간에 있는 스페인 5대 도시의 하나. 마드리드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쯤 걸린다. 사라고사 엑스포는 세계박람회기구(BIE) 공인 박람회로 1993년 대전 엑스포 및 2012년에 개최될 여수 엑스포와 같은 급이다.

주제는 '물과 지속 가능한 개발'.미국을 제외한 세계 104개국에서 참가,문화와 기술을 통한 자국의 이미지 홍보와 브랜드 정립에 총력을 기울였다. 각각의 국가관과 주제관,컨벤션센터,테마플라자 등으로 이뤄진 전시장의 다양한 건물들은 독특한 형체와 이색적인 외부 디자인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한국관은 특히 두드러졌다. 흰색의 한글 자음 조각을 이어붙여 입체적으로 꾸민 외벽은 평면적인 다른 국가관과 확실히 구분됐다. 내용도 다채로웠다. '물과의 대화'를 주제로 영상관에선 3D 애니메이션 '물 거인의 하루'를 상영하고,전시관엔 대형 독에 물 관련 영상화면을 설치한 '투영하는 물'을 배치했다.

300여개의 OLED에 1억4000만년 역사의 경남 창녕 우포늪을 담은 디지털갤러리와 여수엑스포 홍보관 및 문화상품 전시장도 마련했다. 한국의 IT(정보기술)와 문화를 죄다 동원한 셈이다. 그래서인가. 한국관은 현지 언론을 통해 꼭 가볼 만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전체관람객의 20%가 들른다고 한다.

성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룬 일본관이나 독일관에 비하면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일본관의 경우 영상관 3면에 걸친 대형스크린을 마련,전통판화(우키요에)를 통해 200년 전 선조들이 물을 어떻게 다스렸는지와 함께 현대 일본의 삶과 자연을 보여줬다.

전시관에선 관람객 모두에게 녹차를 나눠주고, 출구 바로 앞엔 협찬사라는 명분 아래 일본 주요 기업 로고를 게시했다. '물과의 조화'라는 주제는 물론 일본의 전통과 역사,현재를 오롯이 전달해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독일관은 '물의 순환'을 주제로 수로를 마련,관람객들이 수상 카트를 타고 일주하면서 생활에 쓰이는 물이 어떻게 순환되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물의 정화 기술을 보여주고 관련제품을 전시하는 등 기술 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중국관 또한 '인간과 물의 조화'를 주제로 문명 발상지인 황하와 양쯔강의 역사를 전하고 기간시설을 소개하는 등 중국의 어제 오늘을 알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일본은 문화,독일은 첨단기술,중국은 역사를 앞세움으로써 국가 이미지를 확실히 한 반면 한국은 이렇다 할 이미지를 드러내지 못했다. 소재와 볼거리는 다양했지만 이를 국가 홍보라는 목표에 맞춰 일관성있게 코디네이팅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게 된 셈이다.

경제기술력 과시에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엑스포는 국가나 도시 브랜드 확립에 따른 지역 발전 및 시설물의 사후 활용이 성공의 척도다.

사라고사 엑스포는 2012년 여수 엑스포의 시금석일 수 있다. 여수 엑스포는 상하이 엑스포 개최 2년 뒤에 열린다. 그만큼 부담이 크다. 기간도 상하이는 6개월,여수는 3개월이다. 규모로 따라잡긴 어렵다.

성공하자면 온갖 재료를 나열할 게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총체예술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과 여수를 세계 만방에 각인시킬 주제를 설정한 뒤 추상적이고 모호한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소통 가능한 방식으로 엮어내는 게 필요하다.

그러자면 첨단기술과 문화예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스토리 디자인과 코디네이션,무수한 사공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일괄 사령탑이 필수다. 전시관의 사후 활용에 대한 치밀한 전략 수립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