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일 일본 오사카 인근 사카이시에선 전자업체 샤프의 10세대 LCD(액정표시장치) 패널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127만㎡ 규모인 이 공장은 2010년 완공되면 세계 최대 LCD공장이 된다. 샤프는 새 공장을 발판으로 삼성전자 등과의 LCD패널 경쟁에서 우위에 선다는 전략이다.

샤프는 사카이 공장에 LCD패널과 비슷한 기술이 쓰이는 박막 태양전지 라인도 넣을 계획이다. 미국 유리제조사 코닝,일본 컬러필터업체 토판인쇄,다이니혼인쇄 등 LCD 부품회사들이 함께 입주한다. 이들 회사의 총투자액만 약 1조엔(약 10조원)에 달한다.

공장 건설로 지금은 활기가 넘치는 사카이시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엔 공장이 들어설 수 없었다. 오사카라는 일본 2대 도시의 주변이고,공항과 항구도 가까운 최적의 공장 입지였지만 규제에 묶여 있었다.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까지 공장 신증설을 제한한 '기성 시가지 공장제한법'과 '공장재배치 촉진법' 등이다. 한국의 수도권 규제와 똑같은 것이다.

사카이에 공장 건설이 가능했던 건 고이즈미 정권의 규제 완화 덕택이다. 고이즈미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 철폐에 앞장섰다. 50여년간 유지됐던 '기성 시가지 공장제한법'과 '공장재배치 촉진법'을 각각 2002년과 2006년 폐지했다. 수도권의 성장을 억제해선 국가경제 전체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또 두 법의 실효성도 문제됐다. 원래 수도권 집중을 막고 국토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취지였지만 규제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수도권에 공장을 못 짓게 되자 기업들이 지방으로 가는 대신 동남아시아 등 외국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어차피 지방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원하는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자는 게 고이즈미 정권의 판단이었다.


규제철폐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일본으로 유턴(U-turn)하기 시작했다. 소니가 2002년 중국에서 만들던 수출용 8㎜ 비디오카메라 공장을 일본 나고야 인근으로 옮긴 것을 신호탄으로 주요 기업들이 속속 국내 투자를 늘렸다. 혼다자동차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 300억엔을 투입해 차세대형 엔진을 생산키로 했다. 혼다가 일본에 새 공장을 짓기는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히타치는 20억엔을 투자해 평판TV용 필름 생산능력을 현재의 5배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한 결과 2002년 7.4% 감소했던 수도권 설비투자는 2005년과 2006년 각각 23.4%와 18.0%씩 두 자릿수대로 증가했다. 일본 전국의 공장 착공면적은 2002년 850만㎡에서 △2003년 930만㎡ △2004년 1250만㎡ △2005년 1410만㎡ △2006년 1570만㎡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일본 내 신규 공장설립 건수도 2002년엔 844건이었던 것이 지난해 1782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기업 투자 활성화는 일자리 창출로 연결됐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공업통계에 따르면 2006년 종업원 10인 이상 제조업체의 종업원 수는 747만3379명으로 전년보다 2.3% 증가했다. 그동안 줄기만 하던 제조업체 종업원 수가 15년 만에 늘어난 것이다.

내각부 관계자는 "1990년대 '10년 불황'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수도권 규제 완화였다"며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 등 지난 15년간 단행한 규제 완화로만 얻은 경제적 효과는 18조3000억엔(약 180조원)으로 국민 1인당 14만4000엔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