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복거일씨(62)에게 SF(공상과학소설)는 이해를 어렵게 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본질을 도드라지게 하는 문학적 수단이다. 그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에서 주제를 떼어낸 다음 그 주제를 부각할 수 있는 SF적 배경을 설정하면 명확하게 핵심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복씨의 첫 단편집 <애틋함의 로마>(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작품 10편 중 7편은 SF다. 그동안 <목성잠언집> 등 꾸준히 SF를 발표해온 작가는 "인간의 본질이 생각하는 능력이라면 지적활동을 수행하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며,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면 '낡은'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SF를 통해 사회에서 점점 비중이 높아지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지,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인간보다 지적인 존재 앞에서 인간다움과 인간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성찰하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이 개인과 사회를 다듬어내는 힘이 된 지금,과학을 제외한다면 문학이 제대로 세상을 다룰 수 없다"며 "사소한 일상에만 천착하고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외면하는 문학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단편집에서 그는 인간의 정체성 문제 외에도 인간보다 우월한 로봇이 미래 사회에서 초래할 수 있는 위험,미래사회에서 로봇이 가질 수 있는 권리,정자 제공이 익명으로 이뤄지기에 생기는 문제점 등을 다루었다.
현실 정치를 건드린 단편들도 눈에 띈다. <대통령의 이틀>에는 '헌법을 너무 업신여겨,헌법의 규정들이 아니라면 그 정신에 어긋나는 일들을 많이 한' 전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정의의 문제>에서는 '실정법보다 떼법이 앞서고,헌법보다 국민정서법이 더 권위가 있는 사회'가 한국적 현실이라고 작중 인물이 푸념한다. <우리가 걷지 않은 길>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복씨는 "작가라는 직업은 현실을 떠날 수 없다"며 "작가로서 우리 사회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내 몸의 파편들이 흩어진 길 따라>에서 한 로봇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한 물질 대부분이 로봇 부품처럼 1년 안에 교체된다는 점을 지적하며,인간의 몸에서 평생 바뀌지 않는 부분인 수정체와 난자에 자아와 영혼이 머무르냐고 묻는다. 로봇인 작품 속의 '나'는 한참 고민하다 답을 찾아낸다. '자신의 몸을 조금씩 벗어버린 그 긴 궤적을 따라 그의 자아는 이어진다.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은 우리 몸을 이룬 물질보다 높은 무엇이었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