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슬갑(膝甲)도적'이란 게 있다. 남의 시문과 글귀를 몰래 훔쳐서 쓰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 도적이 바지 위에 껴입는 옷인 슬갑을 훔쳤는데 이것을 어떻게 입는지 몰라 이마에 쓰고 나오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는 얘기에서 비롯됐다. 이 슬갑은 벌써 400년 전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나온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허난설헌의 시가 명나라 시인의 것을 베낀 것이라며 조목조목 위작시비를 제기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지식재산권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표절이 지금에 와서는 도덕 불감증까지 겹쳐 심각한 지경이다. 특히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대학생 사이에서의 표절은 이미 도를 넘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리포트를 짜깁기하는 것은 보통이고,외국의 여러 사이트에서 교묘하게 자료들을 조합해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것이다. 학기중의 리포트와 졸업논문 베끼기는 대학가의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급기야 대학 당국이 예방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가 앞장을 섰다. "본 논문에는 표절이 없고 발견시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표절금지 서약을 학생들로부터 받겠다는 것이다. 표절이 범법행위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키겠다는 의도다.

외국 유명대학들은 표절을 추방하고 명예로운 대학생활을 조장한다는 취지에서 오래전부터 '명예제도(Honor Code)'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표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복지와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도 금지할 만큼 엄격하다. 위반하면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퇴학이나 유급 등의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예로부터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표절은 항상 시비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예술은 표절이든가,혁명이든가,둘 중의 하나'라고 했을까 싶다. 심지어는 초등학생들도 방학과제물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 내용을 아무 죄의식 없이 그대로 베껴 제출한다고 하니,표절의 심각성을 짐작할 만하다.

그릇된 욕심이 빚어내는 슬갑도적이 표절금지 서약을 계기로 얼마나 줄어들지 두고 볼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