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제약회사에 신약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하나의 신약을 탄생시키려면 수백억이 넘는 개발비를 투입해야 하는 데다 개발 기간도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특정 물질을 발굴했더라도 신약으로 출시될 확률은 1만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허로 보호받는 10여년 동안 독점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매력으로 국내 제약사들도 20여년 전부터 신약 개발에 도전했고 이제 하나 둘씩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녹십자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한 A형 혈우병 치료제인 '그린진'을 세계 네 번째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일양약품은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기대되는 '일라프라졸'에 대한 품목 허가를 승인받아 국내 판매를 눈앞에 두게 됐다.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

녹십자(대표 허재회)는 자체 개발한 A형 혈우병 치료제 신약인 그린진에 대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품목 허가를 승인받았다고 3일 밝혔다. 녹십자는 이르면 연내 그린진을 국내에 발매한 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에도 수출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2018년까지 10%대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A형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한 제약사는 전 세계에서 녹십자가 네 번째다. 4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A형 혈우병 치료제 시장은 그동안 박스터 바이엘 와이어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독무대였다. 녹십자는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1996년부터 12년 동안 150억원의 개발비와 50여명의 연구 인력을 투입했다. A형 혈우병은 혈액 응고 8인자 단백질이 결핍돼 출혈이 멈추지 않는 질환으로 녹십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연속 배양할 수 있는 공정을 확립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그린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A형 혈우병 치료제와 관련된 원천 기술은 물론 원료까지 자체 기술로 확보하게 됐다"며 "동물 세포를 이용한 모든 유전자 재조합 의약품을 개발할 때도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만큼 A형 혈우병 치료제 외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궤양 치료제 '일라프라졸'


일양약품(대표 정도언)은 자체 개발한 소화기 궤양 치료제인 일라프라졸이 식약청의 안전성ㆍ유효성 심사를 통과,내년 초 국내에서 발매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안전성ㆍ유효성 심사는 제품의 독성과 약효 등을 따지는 절차로 사실상 신약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 과정이다. 일양약품은 조만간 식약청으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아 이르면 내년 초 국내 판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일라프라졸은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14번째 화학 합성 신약이 된다.

일양약품이 1987년부터 개발한 일라프라졸은 2005년 9000만달러를 받고 미국 TAP에 기술 수출한 제품으로 미국 등 전 세계 판매가 본격화되면 연간 1조5000억~2조원 매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는 기대주다. 이 경우 일양약품은 매출의 10%인 1500억~2000억원가량을 로열티로 받게 된다.

일라프라졸은 지난 5월부터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최근 임상3상 시험을 끝마친 동남아 6개국에서도 순차적으로 판매된다. 미국에서는 임상2상 시험까지 마쳤으며 내년 초 임상3상 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