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천정부지의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키코(Knock-In Knock-Outㆍ통화옵션상품)'에 가입한 기업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좀체 꺾이지 않고 치솟는 환율탓에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달러를 고스란히 환손실로 날려버리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늘어나는 대규모 환손실로 조만간 자본 잠식이 불가피해지는 등 줄도산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키코 상품은 환율이 지정환율 이상으로 오르면 약정 금액의 2∼3배를 시장환율보다 낮은 지정환율로 팔도록 설계돼 있어 원ㆍ달러 환율이 오를수록 피해는 그만큼 더 커지게 돼 있다.

급증하는 손실을 견디다 못한 중소 수출기업들은 이 상품을 만들어 국내 은행을 통해 판매한 국제투자은행을 상대로 국제소송을 제기,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파만파 '키코' 악몽


코스닥 상장기업인 A사는 환율이 당초 약정한 범위를 넘어섬에 따라 매달 10억원의 파생상품 손실을 보고 있다. B사는 환율이 1150원대까지 오르면서 추가 피해 규모를 계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는 상반기 기준 키코 손실이 699억원에 달했다. 이미 2005년부터 벌어들인 누적 영업이익을 훌쩍 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B사 관계자는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환율이 1100원 이하로 잠시라도 떨어지면 손실을 한번에 털어내면서 KIKO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대처할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키코 손실이 자기자본의 10%가 넘은 상장사는 71개사에 달하고 있다. C사의 경우엔 키코 손실이 806억원으로 자기자본 규모를 넘어섰다. 상반기 손실이 84억원에 달한 D사 관계자는 "키코 계약에 따른 손실을 정산하는 월말 전에 환율이 떨어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율 1150원이면 피해액 1조6000여억원


전자제품 수출업체인 E사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올초까지 세 차례에 걸쳐 300만달러 규모의 키코 약정을 했다가 70억여원의 손실을 봤다. 이 회사의 감사는 "지난달부터 정부가 환율 안정 기조를 시사하는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는 바람에 계약해지를 미뤘다"며 "정부 입만 바라보고 있다가 또다시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통화옵션 가입에 따른 중소기업의 손실 상황을 파악한 결과,지난 7월 현재 피해가 접수된 205개사의 피해 규모는 기정산액(환율상승에 따라 은행에 정산해 납부한 금액)만 1859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평가손까지 합칠 경우 5814억에 달한다는 게 중앙회의 추산이다. 중앙회 관계자는 "환율 10원이 오를 때마다 대략 1000억원의 추가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환율이 1150원대 이상 유지될 경우 접수된 중소기업들의 총피해가 1조원대 이상으로 폭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환율전문가들은 원ㆍ달러 환율이 1120원일 때 키코 가입 기업의 전체 피해는 1조3489억원 △1130원이면 1조4452억원 △1140원이면 1조5416억원 △1150원이면 1조6379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키코 피해,국제소송으로 비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상당수 수출 중소기업들은 상품판매업체인 국내은행과 이들 은행에 사실상 판매대행을 맡긴 국제투자은행을 상대로 최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환헤지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186개 중소기업이 법무법인 바른 등 5개 로펌을 통해 국내외 13개 은행을 상대로 최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소장에서 △시중 은행들은 파생상품 판매 실적에만 급급,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았고,△환율추이에 대한 예측이 적절치 못했으며,△계약조건이 일방적으로 상품판매자에게만 유리하게 설계됐다는 이유를 들어 9000억원의 손해액을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동민/이관우/조진형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