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경영
제프리 페퍼 지음│배현 옮김│지식노마드│524쪽│3만2000원


'법률과 소시지를 좋아하려면 절대로 만드는 과정을 보지 마라'는 말이 있다.

정치와 권력이야말로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경영학자 제프리 페퍼 교수는 왜 조직의 정치와 권력이라는 미묘하고 까다로운 주제를 책으로 썼을까? ≪휴먼 이퀘이션≫을 읽고 인적자원관리에 관해 큰 가르침을 받은 이후 그의 책이라면 나오는 대로 사 보는 팬으로서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장면을 상상해보자.R&D(연구개발) 부서에서 획기적인 신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마케팅 부서에서 검토한 결과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의 보고서를 냈고,경영진도 이를 수용해 사장돼버렸다. 그런데 뒤늦게 그 기술을 이용하여 경쟁자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러분이 개발 담당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은 아마 힘없음을 한탄하거나 마케팅 부서와 회사 경영진을 싸잡아 비난할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의 경영≫을 쓴 제프리 페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모든 혁신은 불가피하게 기득권을 위협하게 마련이므로 본질적으로 정치 활동이며,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개발하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무능력의 표현일 뿐이라며 일침을 가한다.

앞서 예로 든 장면과 비슷한 일은 어느 조직에서나 발생한다. 제록스는 마우스,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워드 프로세서 등 오늘날 컴퓨터와 관련된 핵심 기술을 이미 1970년대 중반에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러나 최초의 PC 개발자라는 영광은 애플의 차지였고 그런 기술을 이용해 최고의 성공을 거둔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조직에 속해 일하는 모든 사람,특히 리더에게는 단지 아는 것을 넘어 성취할 줄 아는 정치적 역량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의사결정이 반대에 부닥치는 한이 있어도 뭔가를 이루려는 욕망과,갈등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의 협조를 얻어 조직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과 정치에 대한 이러한 문제 의식이 바로 책의 출발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권력을 마뜩찮게 여긴다.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권력과 자신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90% 이상이 사내 정치가 존재한다고 답했고,76%가 조직에서 출세할수록 업무가 정치적으로 변한다고 답했다. 그 중 절반은 최고경영진이 조직 내부의 정치 활동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엄연한 진실은 어느 누구도 권력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을 잘 알고 바르게 사용할 능력을 기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무기로 당신을 움직이거나 좌절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같은 맥락에서 리더의 행동을 평가하는 핵심 질문 역시 바뀌어야 한다. "매력적이냐 그렇지 않느냐 따위가 아니라,쓸모 있느냐 아니냐?"로.

많은 사람이 링컨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의 전범으로 이상화한다. 그러나 지극히 실용적인 그의 행보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노예해방 선언은 남부 연합의 노예들을 해방시켜주었지만 북부 연합과 타협했던 남부의 주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링컨은 헌법이 허용하는 권력 범위를 초월한 조치들도 숱하게 취했다. 그는 "나라를 잃고서도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후임 대통령 앤드루 존슨이 탄핵 당한 이유는 링컨이 시작했던 월권적 조치들의 상당 부분을 계속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상황을 판단하여 적절한 국가적 목표를 제시하고,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고,반대 세력의 협조를 얻어내는 정치적 능력 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사람이 집단으로 모여서 서로 의존하여 살아가는 한 정치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조직 내 정치에 환멸을 느껴 작은 조직이나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내부의 상호의존과 갈등은 줄겠지만 외부의 사람이나 다른 조직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피할 것이 아니라 조직과 정치의 속성을 제대로 배워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제프리 페퍼 교수는 자신의 목적을 재점검하는 데서부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권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해 풍부한 사례를 들어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조직의 힘을 최고로 결집하여 성과를 내고 싶은 리더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한다.

조영탁 휴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