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평등 정의 영원한 가르침 꾸준히 배우고 익혀 바른 법조인 되리~."

한국의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부르게 되는 '사법연수원가(歌)'의 한 구절이다. 대부분의 교가(校歌)나 사가(社歌) 등은 엇비슷한 음색이다. 이에 비해 사법연수원가는 내지르는 고음도 많고 멜로디도 꽤 웅장한 편이다. 이 연수원가는 음악을 사랑하는 한 법조인의 흥얼거림에서 나왔다.

주인공은 법무법인 한승의 이우근 대표 변호사(60·연수원 4기).그가 사법연수원 수석교수로 재직하던 2000년 사법연수원에서는 연수원가를 공모하고 있었다. 공모한 노래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아예 자신이 직접 연수원가를 작곡했다.

이 대표는 "살면서 가장 뿌듯한 것 중 하나가 사법연수원가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과 이 노래가 지금까지 연수원에서 방송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흐뭇해 했다.

이 대표는 법조계에서 손꼽히는 '음악인'이다. 그가 음악을 즐기게 된 역사는 꽤 길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합창반에서 활동했다. 이후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지휘를 하면서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엔 단순히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갈수록 욕심이 났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갔다. 지금은 타계한 작곡가 고(故) 나운영 선생에게 작곡과 합창,지휘 등 음악의 기본기를 배웠다.

교회 성가대를 10년 이상 지휘한 그는 마침내 대형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무대에 선 것만 줄잡아 20여 번.1년에 두어 번 주기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지난 1월 예술의 전당에서 명예 지휘자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대에서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보면 떨릴 것 같죠? 아니예요. 연주가 시작되면 객석 조명이 꺼져서 관객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뒤로 돌아서죠.그때부터 심장이 쿵쾅거리며 터질 것처럼 마구 뛰기 시작합니다. "

연주자 수십명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볼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모두 프로다. 지휘자인 자신만이 아마추어다. 그러다 보니 지휘 일정이 잡히자마자 맹훈련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현재 서울내셔널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조이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명예 지휘자를 맡고 있다. 작년에는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낸 박인자 숙명여대 교수 등 10명과 함께 문화관광부로부터 예술의 전당 이사로 선정됐다. 조만간 세종문화회관의 법률고문도 계약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지휘한 연주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2002년 무대에 섰던 베토벤의 '코랄환타지'다. 평소에도 늘 음악과 함께 지낸다. 집에는 수십년간 모은 음악 LP판 수백장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대표의 아내는 오르간 연주가다. 음악을 사랑하는 부부는 함께 음악 얘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주변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 음악 동호회까지 만들었다. 이름은 '데뮤즈(demuse)'.민주주의라는 뜻의 데모크라시(democracy)와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의 딸로 음악과 학문의 여신인 뮤즈(muse)의 혼합어다.

이 대표는 "데뮤즈는 '국민들과 함께 즐긴다'는 뜻"이라며 "조주태 창원지검 진주지청장 등 법조인을 비롯해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조용진 한남대 교수,박강자 금호미술관장 등 다양한 인사들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뮤즈는 주기적으로 자선음악회를 연다. 그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명사들의 음악동호회"라고 덧붙였다.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신이 난 그에게 가장 아끼는 곡을 꼽아보라고 하자 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찌푸리며 "사랑하는 곡들이 너무 많아 몇 개만 고르기 힘들다"고 말했다.

장르별로는 웅장한 종교음악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헨델과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모차르트의 진혼곡도 즐겨 듣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더웠던 올 여름에는 밝은 느낌을 주는 베토벤의 7번 교향곡과 함께 지냈다.

법무법인 한승도 그의 '지휘' 아래 쑥쑥 커가고 있다. 출범 4년 만에 국내 형사사건을 독식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법원이나 검찰에서 적게는 10년,많게는 30년씩의 실무 경험을 지닌 변호사들의 휴먼 인프라가 탄탄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1975년 청주지법 판사로 임용됐던 이 대표 역시 2006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은 뒤 한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표가 지향하는 한승은 '덩치와 내실이 함께 커가는 탄탄한 중견 로펌'이다. 지극히 지휘자다운 생각이다. 법률시장 개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외국 법률시장을 역이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렇게 보면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서로 다른 소리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엮어내는 지휘자 그 자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