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경제상황과 높은 유가에도 한국 시장에서 대형차는 여전히 잘 팔립니다. "

마이클 그리말디 GM대우 사장이 지난 4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대형 프리미엄 세단 '베리타스' 발표회에 참석해 던진 말이다. '고유가 시대에 왜 하필 대형차냐'는 궁금증을 불식시키기 위한 발언으로 여겨졌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대형차 불패론'은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국내에서 올해 출시된 신차 10여종 가운데 1500㏄ 미만 경·소형차는 단 한대도 없다. 1600㏄급 준중형차로 포르테가 나왔고 쏘울,J300 등이 대기중이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준중형'이라는 차급까지 만들면서 1600㏄급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소형차 기피증'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자동차 업계의 믿음은 고유가로 서서히 깨지는 양상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산 대형 세단은 9862대가 팔려 2005년 5월(9448대) 이후 처음 1만대 밑으로 떨어졌다. '작은 차'의 선전은 두드러진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1000㏄ 미만 경차 운행대수는 지난 7월 현재 91만3028대로 1년 새 8만303대나 증가했다. 지난달 국산 경차는 6304대나 팔려 작년 동기 대비 37.2% 늘었다.

작은 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고를 수 있는 국산 경·소형차는 몇 안된다. GM대우의 '마티즈'와 기아자동차의 '모닝'이 전부다. 마티즈 후속인 '비트'는 내년 하반기께나 나올 예정이다. 반면 해외 시장을 겨냥한 경·소형차는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작년 10월 인도에 i10(뉴모닝급)을 내놓은 데 이어 다음달 열리는 파리 모터쇼에선 유럽시장을 겨냥한 소형차 i20를 공개한다.

이런 사이 수입 경·소형차만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한 대도 없었던 수입 경차는 올 상반기 62대가 등록됐고,1500㏄ 미만의 수입 소형차는 159대에서 628대로 4배 가까이 뛰었다. 국내에 정식 판매되지 않는 닛산 '큐브',도요타 '사이언xB',다임러 '스마트 포투' 같은 수입차들이 병행수입을 통해 거리를 활보 중이다. 한국이 '작은차의 불모지'가 아니란 증거다. 소비자들은 작고 깜찍한 국산차가 더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김미희 산업부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