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선물에 "손실 얼만데…" 고객 호통
증시침체로 성과급없어 지갑도 텅텅


대형 증권사의 명동지점장인 A씨는 고민 끝에 VIP 고객들에게 추석 선물로 갓김치와 고들빼기를 돌리기로 했다. 시장 상황이 워낙 나빠 회사 측의 지원도 거의 없고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았지만 직원들과 회의 끝에 이번 추석은 약식으로나마 이같이 치르기로 결정했다.
A지점장은 "고가 갈비 등을 돌렸던 작년에 비해 선물이 너무 약소해 그냥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주가가 너무 빠져 고객들에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단가를 낮춰 추석 선물을 골랐다"고 털어놓았다.

올 추석을 맞는 증권사 직원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작년 이맘 때는 주가가 엄청 올라 성과급으로 매달 수백만원을 받아 주머니도 넉넉하고,고객들로부터 고맙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올해는 주가 급락으로 고객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일선 지점장들은 이번 추석 선물을 고르는 데도 애를 먹는다. 공연히 싼 선물을 돌렸다가 호통만 듣는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중소형 증권사의 B지점장은 "어렵게 개인 돈을 털어서 고객들에게 과일을 선물했는데,'손해가 얼만데 이걸로 때우려느냐'며 오히려 야단만 들었다"며 멋쩍어 했다.

신설사는 더 고민스럽다. 신설사의 강남지역 C지점장은 "주로 경력직원들이 많은데 이들이 관리하던 고객들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형편이라 추석 인사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형사나 중소형사 모두 사정이 나쁜 터라 이번 추석에는 선물을 돌릴 고객 수를 줄이고 단가도 낮추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작년엔 갈비세트나 제주산 건어물세트 등이 많았지만,올해는 이보다 저렴한 차(tea)세트나 양이 적고 깔끔한 식품류,중저가 와인 등으로 바뀌었다. VIP 고객과 일반고객 구분없이 똑같은 선물을 하는 회사도 많다.

한 대형사의 강남지역 지점은 작년에는 초VIP급 고객은 25만∼30만원짜리 최상급 전복이나 와인세트 등을 선물하고 A급은 7만∼8만원,B급은 5만원 정도를 선물했지만 올해는 초VIP급은 15만원,A급은 6만원,B급은 3만7000원짜리로 단가를 낮췄다.

비용을 조금이라고 줄여보려고 통상적으로는 와인 등 기호식품을 선물하되 부인이 집안일을 주도하는 경우엔 등급을 높여 차례상에 올릴 수 있는 고급 고기나 과일을 보내는 증권사도 있다.

일선 지점 직원들은 실적이 나빠지면서 인센티브를 전혀 받지 못해 본사 직원들보다 소득이 더 줄어 사기가 말이 아니다. 한 대형사의 D지점장은 "지난해 8∼9월에는 12명 직원 중 신입사원을 뺀 대부분의 직원이 평균 월 500만원을 인센티브로 챙겼지만 올해는 직원 수가 17명으로 늘어난 반면 인센티브를 받는 직원이 2명 밖에 안되고 액수도 크게 줄었다"고 귀띔했다.

한 중견회사 지점장은 "증권사 지점도 이제는 주식매매수수료에 의존하는 영업 행태에서 벗어나 자산관리 영업 등으로 수익원을 다양화해서 주가 부침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완/장경영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