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9월10일) 스위스ㆍ프랑스 국경의 지하에 건설된 둘레 27㎞의 원형 터널에 설치된 강입자충돌기가 정식 가동된다. 1994년 시작돼 95억달러를 들여 만든 이 장치에는 전 세계 과학자 약 1만명이 참여했다. 유럽핵연구기관(CERN)에서 만든 이 '입자가속기'는 우주 탄생 당시를 재현해 물질 생성의 비밀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도대체 우주 탄생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우주는 100억년도 훨씬 전의 '대폭발'에서 시작한 것으로 설명해 왔다. '빅뱅'(Big Bangㆍ대폭발)으로 태어난 우주는 지금도 팽창한다. 대폭발 이전에는 시간,공간,물질 어느 것도 없었다. 빅뱅으로 물질과 반물질(反物質)이 함께 태어났는데,어쩐 일인지 반물질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아 지금 우리 세상은 존재하게 됐다. 반물질과 물질은 반대 전기를 갖고 있어서,서로 반응하면 소멸해 버린다.

지금 물질을 구성하는 알맹이들은 아주 안정된 상태다. 원자,양성자,중성자 등 이름을 갖고 있고,그것은 다시 더 작은 구성요소인 소립자 또는 더 미세한 알맹이(粒子)들로 구성돼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런 입자들은 우주 탄생의 첫 순간에는 그리 안정된 상태에 있었을 까닭이 없다. 아주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이 입자들은 '물질입자의 혼돈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주에는 기본입자 12,힘을 전달하는 매개 입자 4,질량을 결정하는 '힉스'(Higgs)입자 등 17개가 있다고 말한다. 이론상 '입자의 표준 모형'이 그렇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 힉스를 제외한 모든 입자는 입자가속기를 통해 이미 그 존재가 확인됐다. 이번 실험으로 우주 탄생 순간의 '입자들의 플라즈마' 상태를 만들면,여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한다. 힉스 입자의 존재만 확인돼도,그것은 실험물리학의 일대 성공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는 과학자들이 많은 입자가속기를 만들어 실험을 계속해 왔다. 이미 60년대에 한국에서도 사이클로트론이란 가속기를 만든 기록이 있다. 전자나 양성자 같은 전기를 가진 입자(荷電粒子)를 강력한 전기ㆍ자기장 속에서 가속시켜 큰 운동에너지를 주어 충돌시키면 여러 실험을 할 수 있다. 이번에 가동되는 강입자 충돌장치 이전의 가장 규모가 큰 가속기는 미국 페르미연구소에 있다. 페르미연구소의 가속기가 양성자를 1조 전자볼트의 에너지를 가질 정도로 가속할 수 있는 데 비해,이번 충돌기는 그 7배나 되는 에너지를 갖게 해 준다. 순간적으로 태양 중심 온도의 10만배를 만들어,우주 대폭발의 1000만분의 1초 뒤의 상태를 재현해 줄 것이라고 한다.

이번 실험은 인류역사상 가장 놀라운, 최대의 과학실험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실험에도 반대가 없지 않다. 이 가속기를 만든 유럽핵연구기관 홈페이지에도 나오는 표현처럼,"전례 없는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실험은 블랙홀을 만들게 되는데,그것이 우주 전체를 삼켜 버리면 어쩌느냐는 걱정이 있고,그 때문에 이 실험을 중지해야 한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런 걱정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순간적 블랙홀은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사라진다며….

기독교 성경이나 동양 고전에 등장하는 '태초의 혼돈'이 과연 어떤 상태였을까. 조금은 더 밝혀질지 모른다. 일부 프로젝트에 우리 과학자들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태초의 비밀 찾기'에 우리도 적극 참여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