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잇는 여성 CEO] (3) 동해기전산업 임옥정 사장 "보란듯 잘 키워 상장 시킬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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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스크린도어의 '스'자(字)도 듣기 싫었어요. '남편을 빼앗아 간 원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그렇게 원망스러웠던 스크린도어가 이제 효자 품목이 됐어요. 남편이 준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지요. "
임옥정 동해기전산업 사장(49)은 8개월 전만 해도 남편과 자식(1남2녀)밖에 모르던 전업 주부였다.
그가 연매출 40억~5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경영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올 1월 창업주이자 남편인 이윤재 대표가 세상을 떠나면서다.
이 대표의 사인(死因)은 뜻밖에도 담도암.2005년 수술을 통해 '완치' 판정까지 받았는데 재발된 것.임 사장은 남편의 사망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밤낮없는 격무에 지칠대로 지친 남편은 암세포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담도(간,담낭,십이지장을 연결하는 쓸개즙의 이동 통로)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임 사장은 "스크린도어 사업을 한다고 뛰어든 것이 담도암을 재발시킨 원인이었다"며 "기존의 판금 가공 사업만 계속하고 새 사업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은 지금 내 옆에 있었을 텐데…"라며 울먹였다.
이 대표는 1차 수술 이후에도 "한번 시작한 것은 끝장을 봐야 한다"며 원래 계획했던 스크린도어의 프레임 제작 외에 스크린도어 제어장치의 개발에 매달렸다.
제어장치를 개발한다고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한 게 화근이었다. 이 대표는 체력이 바닥나 아내에게 "힘에 부친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2년 만인 작년 12월 개발해 철도기술연구원으로부터 품질인증서를 받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크린도어 제어장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과 6호선 동묘역 등에 설치됐다.
이 대표는 1월 숨을 거두기 전 임직원들에게 "훌륭한 전문 경영인을 모셔와 사장으로 앉혀야 한다"며 "아내에게는 짐을 떠안기고 싶지 않으니 혹시라도 아내를 경영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남편의 생각에 동의했어요. 하지만 중소기업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임직원들도 '회사를 위해 희생한 사장님의 가업이 끊기면 안 된다'며 제가 경영을 이어받기를 원했어요. "
임 사장은 한 달간 고민한 끝에 '숙명이라면 피하지 말자.남편 목숨과 맞바꾼 회사인데 보란듯이 키워보자'라는 각오로 가업을 잇기로 했다.
다행히도 승계 과정은 순탄했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세 자녀와 함께 상속을 받아 1억여원의 상속세만으로 남편이 보유한 회사 지분(75%)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임 사장은 "경영에 대해선 아직 문외한이지만 직원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며 일을 익히고 있다"며 "남편이 쌓은 인맥이 큰 도움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창업 때부터 남편과 함께 일해온 여동생 임경옥 총무과장(44)이 '과외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거래처 남자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영업활동은 여전히 서툴지만,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는 게 임 사장의 설명이다.
임 사장은 "아들뻘 되는 생산직 직원들도 '스승'이란 생각으로 배우고 있다"며 "5년쯤 뒤 상장해 함께 고생한 임직원들에게 우리사주 등을 나눠주는 게 소박한 꿈"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임옥정 동해기전산업 사장(49)은 8개월 전만 해도 남편과 자식(1남2녀)밖에 모르던 전업 주부였다.
그가 연매출 40억~5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경영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올 1월 창업주이자 남편인 이윤재 대표가 세상을 떠나면서다.
이 대표의 사인(死因)은 뜻밖에도 담도암.2005년 수술을 통해 '완치' 판정까지 받았는데 재발된 것.임 사장은 남편의 사망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밤낮없는 격무에 지칠대로 지친 남편은 암세포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담도(간,담낭,십이지장을 연결하는 쓸개즙의 이동 통로)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임 사장은 "스크린도어 사업을 한다고 뛰어든 것이 담도암을 재발시킨 원인이었다"며 "기존의 판금 가공 사업만 계속하고 새 사업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은 지금 내 옆에 있었을 텐데…"라며 울먹였다.
이 대표는 1차 수술 이후에도 "한번 시작한 것은 끝장을 봐야 한다"며 원래 계획했던 스크린도어의 프레임 제작 외에 스크린도어 제어장치의 개발에 매달렸다.
제어장치를 개발한다고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한 게 화근이었다. 이 대표는 체력이 바닥나 아내에게 "힘에 부친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2년 만인 작년 12월 개발해 철도기술연구원으로부터 품질인증서를 받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크린도어 제어장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과 6호선 동묘역 등에 설치됐다.
이 대표는 1월 숨을 거두기 전 임직원들에게 "훌륭한 전문 경영인을 모셔와 사장으로 앉혀야 한다"며 "아내에게는 짐을 떠안기고 싶지 않으니 혹시라도 아내를 경영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남편의 생각에 동의했어요. 하지만 중소기업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임직원들도 '회사를 위해 희생한 사장님의 가업이 끊기면 안 된다'며 제가 경영을 이어받기를 원했어요. "
임 사장은 한 달간 고민한 끝에 '숙명이라면 피하지 말자.남편 목숨과 맞바꾼 회사인데 보란듯이 키워보자'라는 각오로 가업을 잇기로 했다.
다행히도 승계 과정은 순탄했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세 자녀와 함께 상속을 받아 1억여원의 상속세만으로 남편이 보유한 회사 지분(75%)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임 사장은 "경영에 대해선 아직 문외한이지만 직원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며 일을 익히고 있다"며 "남편이 쌓은 인맥이 큰 도움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창업 때부터 남편과 함께 일해온 여동생 임경옥 총무과장(44)이 '과외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거래처 남자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영업활동은 여전히 서툴지만,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는 게 임 사장의 설명이다.
임 사장은 "아들뻘 되는 생산직 직원들도 '스승'이란 생각으로 배우고 있다"며 "5년쯤 뒤 상장해 함께 고생한 임직원들에게 우리사주 등을 나눠주는 게 소박한 꿈"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