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내 갚아야할 대출 원금만 110조원 … 연체율도 급등

▲사례1.2005년 10월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려 서울 마포에 85㎡짜리 아파트를 장만한 직장인 김씨는 이자만 내던 거치기간이 끝나 내달부터는 대출 원금도 갚아나가야 한다. 대출 초기 매달 35만원 정도 냈던 이자가 최근 들어 50만원을 넘어섰고 내달부터는 60만원씩 원금도 매달 상환해야 한다. 김씨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출금 갚는 데 써야 할 판"이라며 "당장 내달부터는 적자"라고 말했다.

▲사례2.A은행의 잠실 지점장 이모씨는 최근 송파지역 재건축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오히려 연체율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자 초조해하고 있다. 아파트 준공이 끝나면서 이주비와 중도금,잔금 등 집단 대출금 상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부동산 경기침체로 거래가 부진해지자 입주를 하지 못한 고객들이 담보대출로 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장은 "특히 처분조건부 대출을 받은 개인들이 기존에 살고 있는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서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620조원에 달하는 가계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반기까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던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8월 이후 급등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소비는 지난 2분기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적자가구 숫자도 크게 늘고 있다. 전체 가계대출중 1년이내에 갚아야할 대출원금만 109조원이 넘는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급격한 금리 상승,물가 불안 등 세 가지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가계발(發) 신용경색과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계 연체율 급등조짐

7일 은행권에 따르면 각 은행별로 상반기 0.3~0.6%였던 가계대출 연체율이 최근에 0.8% 안팎으로 높아졌다. 소호 등 개인사업자의 연체율은 이미 1.5~2.0%로 급등해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달 들어 처음으로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해 연체 유예에 들어간 건수가 크게 늘었다"면서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자를 내달에도 갚지 못해 연체대출로 잡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의 관계자는 "최근 들어 가계대출의 연체율이 빠른 속도로 높아지면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주 단위로 지점별 상황을 체크,적극적으로 채권회수 절차에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을 포함,수도권 경매시장에 나온 주거용 부동산은 모두 2085건으로 7월보다 40% 증가하면서 올 들어 최고 건수를 기록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2000년 말 87조원에서 올해 3월 말 284조원으로 2.3배 늘었고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이 넘는 53.0%에 달했다. 손재환 하나은행 가계영업추진부장은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신용카드 사용액이 늘어나고 있다"며 "추석 이후에는 가계부문 연체율이 오를 수 있다고 보고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수지는 한계 상황

최근 발표되는 각종 지표들도 가계수지가 한계상황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분기 중 전체 가구의 28.1%가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10가구 중 3가구꼴로 마이너스 살림을 꾸리고 있다는 얘기다. 순저축률은 지난해 2.3%로 2002년 이후 최저치를 보인 데 이어 올해는 1%로 추락할 것으로 한국은행은 보고 있다. 2분기 가구당 부채규모는 약 4000만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체 가구 중 빚이 있는 가구의 비중이 55%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구당 부채는 평균 8000만원에 육박한다"면서 "평균 대출금리를 7~8% 적용하더라도 연간 이자부담만 560만~640만원 정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평균치보다 많은 돈을 빌린 가계의 경우 그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가계수지의 악화는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 2분기 1만9038건으로 1분기(1만5500건)에 비해 22.8%나 늘었다.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2004년 이후 감소세를 보여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박상현 CJ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고용악화와 물가상승 등으로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가계부채 부담은 빠른 속도로 늘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가계부실 위험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심기/정인설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