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권 때이던 1999년 4월7일 '세풍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이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대행은 하루 뒤로 예정됐던 방중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장쩌민 국가주석과의 면담일정이 잡혀 있었던 터라 엄청난 외교적 결례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만큼 후폭풍이 거셌다. 결국 조 대행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4년 뒤 노무현 정권시절이던 2004년 6월29일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통과될 것으로 관측됐으나 결과는 역시 부결이었다.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던 열린우리당에서 30여표의 반란표가 나온 탓이다. 시민단체의 반발은 차치하고 당내 평당원들이 소속 의원 전원에게 찬반 기표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 반대표 색출에 나서는 초유의 사태를 몰고 왔다.

이처럼 우리 정치사에서 의원 체포동의안은 고비 때마다 커다란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국회가 국민의 뜻에 역행해 동의안을 부결시킨 결과다.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것이라곤 1986년 '통일국시' 발언을 한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안이 변칙처리된 게 국민의 뇌리에 남아있는 정도다.

동의안 부결이 되풀이 되는 배경에는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의원들의 '동류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정치인 누구도 정치자금 등 비리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점에서다. "내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는 구여권 실세 정치인의 한마디가 정치권의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여야 지도부로선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표결을 막기 위한 과거 '방탄국회'의 배경이다. 이런 악폐를 해소하기 위해 2005년 만들어진 게 바로 국회법상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이내 표결'조항이다. 이를 주도했던 민주당은 자당 소속 김재윤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저지에 사활을 거는 등 정권을 내준 뒤 입장이 180도 바뀌어 있다. 한나라당 역시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묵인하는 듯한 모양새다. 결국 정치권의 제 식구 감싸기에 국회법은 한낱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새 정치를 외치며 대선까지 출마했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검찰의 9차례에 걸친 소환에 불응하며 불체포특권의 울타리안에 버티고 있다.

이것 말고도 18대 국회의 역주행은 이미 도를 넘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이 법위반을 밥먹듯 한다. 1주일 이내에 하게 돼 있는 국회 개원식은 한 달을 넘겼다. 6월에 끝냈어야 할 원구성은 81일 만인 8월에야 마쳤다. 3개월 동안 직무를 유기하며 국민 세금을 축낸 셈이다. 어렵사리 연 국회는 헛바퀴만 돌고 있다. 정치싸움에 민생은 뒷전이었던 17대 국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근원은 정치 실종이다. 당내 계파 갈등 하나 수습 못해 몇 달을 허송한 집권세력이나 금배지를 달자마자 국회는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섰던 제1야당에 지지를 보낼 국민은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는 여권의 민생대책에도 떠난 민심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나 대안세력을 밀어달라고 호소하는 민주당의 지지율이 10%대에 고정돼 있는 이유다.

출범 100일을 맞은 18대 국회는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꾸로 가는 정치는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이재창 정치부 차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