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대형 금융지주회사와의 대등 합병을 통해 국내 금융시장 지도를 바꾸겠다"고 9일 말했다. 황 회장은 대등합병 대상으로 KB금융그룹과 규모가 엇비슷한 신한금융 및 우리금융,그리고 민영화와 지주사 전환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산업은행 등을 우선 거론했다.

황 회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주사 전환과정에서 외국인 주주들을 만난 결과 지주사 전환 이후 KB금융지주가 한국 금융시장 재편의 주역이 돼 기업가치 상승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을 많이 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일본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국가를 보면 은행 산업이 대형 은행 2~3개 중심으로 재편됐다"며 "하지만 한국은 금융시장이 좁은데도 아직 은행이 너무 많다"고 진단했다.

황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KB금융이 자체 성장만으론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결국 전략적 인수합병(M&A)이 KB금융의 갈 길이라는 데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의견 일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전략적 M&A의 화두로 '대등합병'을 내세웠다. 황 회장은 "국내에선 지금까지 인수가 M&A의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어느 한 곳이 먹고 먹히는 인수가 아니라 서로 간 장단점을 보완하는 대등합병으로 상호 경쟁력 향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한국의 대표 금융그룹이 세계무대 혹은 적어도 아시아시장에서 명함을 내밀려면 자산규모로 500조원은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자산이 200조원을 웃도는 이른바 '빅3' 간 대등합병을 생각할 시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등합병의 경우 주주들은 대부분 찬성하지만 양측 경영진 간 주도권 다툼으로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만약 어떤 금융지주가 KB금융지주와 대등합병하고 시장에서 상대편 경영진이 나보다 낫다고 판단하면 내가 내려앉거나 물러설 수도 있다"고 배수진을 쳤다.

황 회장은 대등합병 시점에 대해선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늦어도 내년 하반기까지는 뭔가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황 회장은 '빅3' 간 대등합병이 여의치 않으면 차선책으로 산업은행 기업은행 외환은행 하나금융지주 등과의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KB금융지주가 이 곳 중 하나와 합치면 자산규모가 350조원짜리 금융그룹이 탄생하는데 이 정도는 돼야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이 된다는 게 황 회장의 생각이다.

황 회장은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 제2금융권 육성과 관련해선 지주사 또는 대형 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제2금융권 자회사 규모를 키운 다음 부족하면 중대형 제2금융회사를 M&A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황 회장은 자사주 처리에 대해선 "연말까지 20%가 넘는 자사주를 국내외 전략적 및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남는 물량은 교환사채(EB)를 발행해 3년 후 주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설명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