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다운그레이드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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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코앞에 닥쳤건만 명절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얄팍해진 주머니 탓에 선물 사기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유통업체와 상가들은 특수를 누려야 할 시점인데도 매상이 오르지 않아 울상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와 물가 상승으로 국민들의 생활형편은 어렵기 짝이 없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분기 중 민간소비는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전체가구의 28.1%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증가일로다. 가구당 평균 대출금이 4000만원에 이르고,갚아야 할 이자는 2004년 말 대비 80%나 증가했다. 주가 급락과 주택 가격 하락이란 자산디플레까지 겹쳐 고통이 더하다. 가계부실이 금융위기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이야기마저 나돈다.
이런 변화는 중산층의 기반을 한층 더 무너뜨릴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중산층(중위소득 대비 50~150%) 가구 비중은 1996년 68.5%에서 2006년 58.5%로 10%포인트나 감소했다(KDI조사).1년에 1%포인트씩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빈곤층 가구 비율은 11.3%에서 17.9%로 증가했다. 가계의 생활 수준 하향 조정, 중산층의 빈곤층화 등 다운그레이드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까지 떨어진 탓이다. 그러니 거리엔 청년백수가 넘쳐나고 88만원 세대라는 자조(自嘲)가 시사하듯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중장년층이 안정된 것도 아니다.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에 불과하고 빠른 경우는 40대 중반에도 밀려나는 게 현실이다. 퇴직금을 까먹고 살다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머지 않아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산층 붕괴는 위험신호다. 나라의 버팀목이자 계층 간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야 할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지면 사회 통합과 안정은 힘겨워지는 대신 사회불안이 야기되기 십상이다. 근거도 불투명한 광우병 촛불시위에 무직자 노숙자들이 상당 비율을 점했던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중산층 붕괴는 백해무익한 반기업 정서,반부자 정서의 확산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
물론 중산층 복원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단순히 분배정책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분배를 강조한 참여정부 시절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 게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고 얼마 전 발표된 감세 정책이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의 설명처럼 트리클 다운 효과가 나타난다고 해도 시간은 상당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국민과의 대화에서 3~4년 정도를 예상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다. 경영여건이 좋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투자를 늘리고 신규채용을 확대해야 한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근로자들의 퇴출 시기를 늦추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노동계의 자제와 협력이 절실하다. 대기업노조들의 내 몫 챙기기가 기업들의 신규 채용 기피,비정규직 증가,중소기업 경영여건 악화를 유발해 중산층 붕괴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정부 또한 기업 환경 개선에 매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가 정부 수립 60년 만에 세계 13위 경제대국이 된 것은 열심히 일만 하면 소득과 신분이 상승하는 업그레이드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고 사회에도 활력이 넘쳐났다. 다운그레이드 사회에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중산층을 복원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돌려주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경기 침체 장기화와 물가 상승으로 국민들의 생활형편은 어렵기 짝이 없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분기 중 민간소비는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전체가구의 28.1%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증가일로다. 가구당 평균 대출금이 4000만원에 이르고,갚아야 할 이자는 2004년 말 대비 80%나 증가했다. 주가 급락과 주택 가격 하락이란 자산디플레까지 겹쳐 고통이 더하다. 가계부실이 금융위기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이야기마저 나돈다.
이런 변화는 중산층의 기반을 한층 더 무너뜨릴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중산층(중위소득 대비 50~150%) 가구 비중은 1996년 68.5%에서 2006년 58.5%로 10%포인트나 감소했다(KDI조사).1년에 1%포인트씩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빈곤층 가구 비율은 11.3%에서 17.9%로 증가했다. 가계의 생활 수준 하향 조정, 중산층의 빈곤층화 등 다운그레이드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까지 떨어진 탓이다. 그러니 거리엔 청년백수가 넘쳐나고 88만원 세대라는 자조(自嘲)가 시사하듯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중장년층이 안정된 것도 아니다.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에 불과하고 빠른 경우는 40대 중반에도 밀려나는 게 현실이다. 퇴직금을 까먹고 살다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머지 않아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산층 붕괴는 위험신호다. 나라의 버팀목이자 계층 간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야 할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지면 사회 통합과 안정은 힘겨워지는 대신 사회불안이 야기되기 십상이다. 근거도 불투명한 광우병 촛불시위에 무직자 노숙자들이 상당 비율을 점했던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중산층 붕괴는 백해무익한 반기업 정서,반부자 정서의 확산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
물론 중산층 복원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단순히 분배정책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분배를 강조한 참여정부 시절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 게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고 얼마 전 발표된 감세 정책이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의 설명처럼 트리클 다운 효과가 나타난다고 해도 시간은 상당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국민과의 대화에서 3~4년 정도를 예상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다. 경영여건이 좋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투자를 늘리고 신규채용을 확대해야 한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근로자들의 퇴출 시기를 늦추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노동계의 자제와 협력이 절실하다. 대기업노조들의 내 몫 챙기기가 기업들의 신규 채용 기피,비정규직 증가,중소기업 경영여건 악화를 유발해 중산층 붕괴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정부 또한 기업 환경 개선에 매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가 정부 수립 60년 만에 세계 13위 경제대국이 된 것은 열심히 일만 하면 소득과 신분이 상승하는 업그레이드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고 사회에도 활력이 넘쳐났다. 다운그레이드 사회에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중산층을 복원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돌려주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