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공부… 밤엔참선 '山中禪談' 열기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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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이 공부(참선)를 해서 이번 생에 견성을 못해도 괜찮습니다.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대혜종고 스님은 ≪서장≫에서 '정견만 갖춰도 도둑놈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안다. 다만 잡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21일 공부하는 동안 공부에 큰 진전이 있기 바랍니다. "
지난 6일 오후 경남 함양군 마천리의 지리산 벽송사 청허당.조계종 원로 고우 스님의 특강에 청허당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스님들이 귀를 세웠다. 이들은 벽송사 선원장 월암 스님이 2006년에 이어 두번째로 마련한 '벽송선회(禪會)'에 참가한 선객들.지난달 15일 하안거가 끝난 뒤 20일 만에 다시 선방에 모여 번뇌를 단번에 자를 지혜의 칼을 벼리기 시작했다.
'벽송선회'는 안거와 안거 사이에 열리는 '산철 결제'다. 여느 선방의 안거나 산철결제에선 참선만 하는데 비해 벽송선회는 경전 및 선어록(禪語錄) 강의와 참선을 병행한다는 점에서 선가(禪家)의 새로운 실험이다. 선방에선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와 사교입선(捨敎入禪·경전을 버리고 선에 들어감)을 강조하지만 경전이나 어록의 도움 없이 참선할 경우 방향을 잃기 쉽다는 것.
지난 5일 선회를 시작하면서 덕숭총림 수좌 설정 스님은 법문을 통해 "'사교입선'은 무조건 책을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문자와 지해(知解·깨달음이 아닌 알음알이)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라며 "부처님과 옛 선사들의 가르침을 모르고 참선하는 것은 나침반 없이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는 참선을 하는 벽송선회의 인기는 예상 밖이다. 10일 동안 진행했던 2006년 제1회 선회에는 선방 수좌와 각 사찰 주지를 비롯한 소임자 등 100명가량이 신청해 40여명이 수행했다. 기간을 21일로 늘린 올해에는 초참(초보자)부터 구참까지 선방 수좌만 120여명이 지원해 이 중 90여명을 받아들였다. 입방 기회를 얻지 못한 10여명은 청강이라도 하겠다며 벽송사를 찾아왔다.
월암 스님은 "총림이나 큰 사찰을 제외하면 공부를 점검할 어른이 안 계셔서 수좌들의 답답함이 그만큼 컸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강의를 맡은 강사들의 면면도 쟁쟁하다. 고우 스님을 비롯해 설정,종진(해인사 율주) 혜국(석종사 금봉선원장) 영진(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설우(법인정사 선원장) 지환(동화사 기본선원장) 법산(동국대 교수) 수불(안국선원장) 스님 등이 길라잡이로 나섰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돈오선(頓悟禪)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월암 스님은 "교리와 선어록 공부를 통해 정견을 바로 세운 바탕에서 참선을 하는 것이 대혜종고 스님부터 이어온 간화선풍인데 그것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며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벽송사(지리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