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리먼브러더스 딜 사실상 무산…정부 "현 상황서 수십억弗 투입 곤란"
산업은행이 10일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 인수 포기를 선언한 것은 인수가액에 대한 견해차가 워낙 컸던 데다 정부가 대규모 달러 유출에 난색을 표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달러가 부족해 '외화유동성 위기설'이 돌고 있는 마당에 외국 금융회사 인수에 수십억달러를 투입하기는 곤란하다는 정부의 판단이 결정타였다.

산업은행은 최근까지도 리먼 측과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말 리먼 측에 △리먼을 굿뱅크와 배드뱅크로 나누고 △산업은행은 이 중 굿뱅크의 경영권을 인수하며 △인수단가는 시가보다 상당폭 할인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최종적으로 제시했다. 리먼은 이 가운데 굿뱅크와 배드뱅크로 회사를 분할하며 산업은행이 신규 자본을 투입할 경우 굿뱅크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인수 단가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산업은행 일각에선 리먼 굿뱅크의 지분 50%+1주를 60억달러에 사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리먼은 2배가량은 돼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 지난 8일부터 협상은 사실상 중단됐다. 전 위원장은 당장 국내에서도 '달러 기근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리먼을 인수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입하는 것은 현재 금융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더군다나 리먼이 앞으로 상당 규모의 추가 상각을 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등 불투명하다는 점도 정부가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협상을 중단토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포기설이 제기된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리먼의 주가는 전날보다 6.36달러 떨어진 7.7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하루 새 45% 폭락한 것으로 1998년 10월 이후 약 1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리먼 주가는 모기지자산의 가치 상실에 따른 손실을 반영,올 들어 88% 떨어졌다. 신용경색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며 다우지수도 2.43% 폭락했다. 특히 AIG 와코비아 등 금융주의 하락폭이 컸다.

리먼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것은 모기지 관련 부실 자산 상각으로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리먼은 10일 3분기에 39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다우존스뉴스가 "전 위원장이 산업은행과 리먼의 협상은 끝났다고 밝혔다"는 보도를 내보내자 실망한 주주들이 리먼 주식을 투매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리먼은 자산운용 부문을 처분하기 위해 노무라홀딩스,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과 벌인 협상에서도 이렇다 할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박준동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