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젊으나 늙으나 고향은 푸근하고 고향 가는 길은 흥분되지만 며느리들은 시댁 마을 어귀 이름 모를 들꽃 하나도 보기 싫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노는 날이 짧아 귀성길이 고생길이 될 게 뻔한 데다 상여금도 없고 주가는 폭락해 살기도 팍팍하니 아예 귀향을 포기하는 게 상책이라는 며느리의 의견을 따르는 아들들이 꽤 있다. 그런데도 길거리에 추석선물 배달 차가 즐비한 것은 선물로라도 편치 않은 맘을 때우고 싶은 자식들 때문일 것이다.

우리네 정서로는 보통 추석 바로 전 주일이나 전전 주일에 미리 벌초를 한다. 깨끗이 이발해 드리고 일주일 후 우루루 성묘하러 가서 머리를 조아려야 조상님께 떳떳하고 개운하다. 산에 오르다 보면 후손들이 몽땅 이민을 가 버렸는지 쫄딱 망했는지 뗏장이 떨어져 나간 곳이 드문드문,뻘건 흙이 드러나고 지붕 개량한 지 몇십 년 된 것같이 풀이 무성하고 봉분은 뭉개져 납작해서 산소인지 뭔지 분간이 어렵다. 자식들이 날 잡아서 다같이 벌초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없겠지만 요즘은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어떤 집은 벌초하러 갔더니 벌써 조상님이 예쁘게 꽃단장하고 계셨다는데,우렁 각시가 왔다 간 것일까? 그 의문의 열쇠는 바로 자기 다리가 가려운데 남을 시켜 또 다른 남의 다리를 긁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돈은 여기서 받고 벌초는 저기서 하니 돈은 돈대로 쓰고 조상님은 여전히 더벅머리를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비포와 애프터를 포토로 찍어서 보내준다는데 어찌된 일일까?

이에 질세라 여자들도 일하기 싫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명절 음식 장만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눈치껏 미루고 적당히 쉬어가며 음식을 만드는 얌체 며느리에,늦게 와서 배시시 봉투로 어째보려는 며느리도 있지만 뼈빠지게 나서서 도맡아하는 곰 같은 며느리도 있다. 집집마다 씩씩한 곰탱이가 하나씩 있으면 다행이지만 요즘은 차례 음식도 배달시키는 집들이 늘고 있다. 시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당차고 잘난 며느리의 설득력 있는 말발에다 비싼 음식값을 자신이 다 부담한다는 데 대해 시어머니의 권위로 무조건 반대하기란 쉽지 않으니 두 손 들고 만다. 그래도 찔리는 건 있어서 자기 집에서 한 것과 똑같은 정성으로 해 달라는 주문을 하는 눈물 겨운 효도(?)쟁이 며느리가 기특할 뿐이다.

"얼마나 편하고 좋아요. 상만 준비하고 있다가 딱딱 놓기만 하면 되니까요. 시간 맞춰 배달해 주는데,상에 놓는 순서랑 제사 지내는 순서까지 다 알려 주니 너무 좋죠."

옛날부터 게으르고 일하기 싫은 귀차니스트들 때문에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고 뭐든지 대충대충 하는 인간들을 꼬집어 말했는데,이렇게 건성으로 하는 건 남편들이 밤일할 때 하는 짓들과 너무 비슷하다. 아내를 위해서 제대로 하자면 내 부모 산소에 벌초하듯 꼼꼼히 구석구석 더듬어 줘야 한다.

"남편은 사실 제가 어디를 어떻게 해 줄 때 좋아한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애요. 아무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아주 잠깐 만지다가 바로 시작하거든요. 이제는 별 기대 안 해요. "

아내의 다리 사이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는 이제 '준비 끝'이라고 마치 과녁인 것처럼 곧장 돌진하는 남편은 정말 아내를 짜증 나게 한다. 무슨 오토매틱 기계를 돌리기 전에 기름 치는 작업처럼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에 남편이 치한 같다거나 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온 몸에 살이 접힌 데나 수풀이 우거진 데를 입과 손이 여행을 해 주면 좀 좋으련만 남편은 야박하기 그지없다. 제대로 사람 대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치사한 생각이 들고 내려놓았던 자존심도 슬그머니 집어들어 머리 위에 이고 싶어진다. 남을 시켜 벌초하고 남에게 제사 음식도 만들게 하는 판에,고향까지 왔다갔다하기 귀찮은데 대신 성묘해 주는 도우미는 없을까? 설마 밤일도 본 게임만 부부가 하고 에피타이저나 디저트는 남을 시키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니겠지? 너무 앞서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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