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 시인 >

짧은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손에 손에 꾸러미를 든 사람들로 역 대합실이 붐비고 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막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교통체증이 없이 벌써 고향집에 가 있다. 우리는 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고,고향은 또 늘 우리를 기다린다.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는 시 '고향'에서 정지용은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라며 고향 상실을 노래하기도 했지만,이 시의 바탕에도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깔려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 살던 굴 쪽으로 두고 죽는다는 옛말(首丘初心)이나,호(胡)나라 말은 북풍에 몸을 의지하고,월(越)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든다는 말씀(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사가 우주생명의 근본 심성이라는 것을 잘 일러준다. 아무튼 가장 크고 원만한 보름달이 떠오르는 고향집으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저 달빛에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미당 서정주의 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이다. 마루에 빙 둘러앉아 방앗간에서 갓 빻아온 멥쌀가루로 송편을 빚는 한 가족의 도란도란한 명절 풍경이 절로 떠오르는 시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솔잎을 장만해 오셨을 것이고,얼굴이 까만 아이들은 송편을 찌는 솥가에 쪼그리고 앉았을 것이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달빛 때문이다. 달 보시던 어머니는 달빛의 밝음을 무게로 읽어낸다. 무량하게 쏟아져 내리는 달빛에 꽃가지가 휘이겠다니.평생을 땅에서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입말은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요 며칠 서정주의 시들을 읽다보니 서정주는 생전에 추석에 관한 시들을 꽤 여러 편 썼다. 내킨 김에 한편의 시를 더 읽어보자.시 '팔월이라 한가윗날 달이 뜨걸랑'의 일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팔월이라 한가윗날 달이 뜨걸랑,/무엇을 하다가 이겼다는 자들이여/그 이긴 기쁨만에 취하들 말고/그대들에게 져서 우는 자들의/설움을 또 같이 서러워할 줄 알라.//그리고 무얼 하다가 졌다는 자들이여/찌푸러져 웅크리고 앉았기보다는/일어서서 노래 불러 춤출 줄을 알아라.//서럽고도 또 안 서러울 수 있는 자여/한가윗날 달빛은 더 너희들 편이어니."

이 시에서도 시인은 커다란 달과 달빛을 노래한다. 시인은 이긴 자들과 진 자들에게 골고루 달빛을 뿌려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달빛은 누구 한 편의 소유가 아닌 것이니.달빛은 아무리 우리 가슴에 퍼 담아도 모자람이 없다. 오직 넉넉하다. 다만 추석날 떠오르는 달빛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인심을 나눌 일이다. 이긴 사람들은 달빛이 아래로 내리듯 더 하심(下心)하고,찌푸리고 웅크린 사람들은 메밀꽃밭 같은 달빛을 맞으며 억눌린 마음의 대지를 빛으로 환하게 밝힐 일이다.

가족끼리 정담을 나누면서 모싯잎송편을 빚고,추석 보름달을 맞으러 동산으로 바닷가 곶으로 나가보자.추석 보름달처럼 부드럽고 보다 너그러워질 일을 생각하고,통이 큰 뜻을 세워도 보자.나라가 어렵고 너나없이 생활이 어려운 만큼 올해는 추석 보름달이 더 빨리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