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하이닉스반도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하이닉스 매각을 공식화하는 공문을 돌렸을 때 상당수의 채권은행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손님이 있다는 확신도 없는데 왜 좌판을 까느냐"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실제 지금까지 하이닉스 인수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하지만 채권단과 전자업계에선 하이닉스 매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는 분위기다. 최근 반도체 경기 악화로 한때 4만원선을 웃돌던 주가가 반토막 나있는 만큼 예전에 비해 가격 부담을 한결 덜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여기에다 한번 바람을 타면 수조원의 이익을 올리는 반도체업계의 특성은 신성장 동력을 애타게 찾고 있는 기업들에 충분한 매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왜 네 곳인가?

채권단이 일단 내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후보그룹은 LG SK 한화 KT 등 네 곳이다. 독과점 문제가 야기될 삼성과 업종 연관성이 없는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는 일단 배제했다.

대신 LG그룹은 주력업종의 성격상,반도체부문 인수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휴대폰과 디스플레이 사업의 약진으로 삼성과의 격차를 많이 줄였다지만 반도체 없는 전자회사로서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기류도 있는 게 사실이다. LG는 또 연간 1조원 이상의 메모리반도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SK와 KT는 자금력 외에 통신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채권단의 눈길을 끌고 있다. IT(정보기술) 업종내 유.무선 최고의 서비스업체로 군림하고 있는 이들 기업은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 제조 부문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판단이다.

전자사업이 없는 한화의 경우에는 신성장동력을 찾는 김승연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한화가 하이닉스 인수전에 참여할지 여부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화 관계자는 "지금은 대우조선해양에 집중하고 있지만 탈락할 경우 다른 기업의 인수를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 아끼는 기업들

한화를 제외한 3개 그룹은 한결같이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존 사업과 연계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적고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매년 조 단위의 시설 투자를 거듭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럽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LG그룹의 경우 지난 3월 "우리는 반도체 없이 사는 법을 터득했다"는 남용 LG전자 부회장의 발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정상국 ㈜LG 부사장도 "그룹의 입장은 올해 초와 바뀐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SK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하이닉스 인수와 관련된 어떤 검토 작업도 벌이고 있지 않다"며 "SK의 주력사업이 통신과 에너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반도체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인수후보 기업으로 거론되지 않았던 KT의 서정수 부사장도 "채권단과 몇개의 투자펀드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이닉스를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채권단이 4개 그룹중 2개 정도는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는 만큼 현 단계에서의 입장을 최종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채권단은 인수 기업에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인수 조건을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이 갖고있는 36.1%에 달하는 지분 중 경영권 행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분만 매각,인수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송형석/이정호/장창민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