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험에 처한 리먼브러더스를 살리기 위해 헨리 폴슨 미 재무 장관,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장,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 등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동안 월가 주요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들을 소집해 업계 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가이스너 총재는 이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리먼의 파산은 개별 은행 차원이 아닌 금융권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회의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사흘 연속 이어졌다. 정부 측 인사들은 리먼 파산에 따른 파장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업계가 리먼을 인수하든지 시장 파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내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상황이 워낙 다급한 탓에 월가 주요 인사들은 뉴욕 연방은행에 대부분 모습을 드러냈다. 존 맥 모건스탠리,존 테인 메릴린치,제이미 다이몬 JP모건체이스,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비크람 팬디트 씨티그룹 CEO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리먼 사태를 방치하면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뚜렷한 해결책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가장 큰 논란은 리먼 인수과정에서의 정부 지원 여부였다. 리먼 잠재 인수 후보자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영국은행인 바클레이즈는 모기지 자산의 잠재 부실을 정부가 보장해줘야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데도 정부 측은 민간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베어스턴스 사태 때와 달리 리먼의 위험은 오래전부터 시장에 노출됐다는 이유에서다. 민간 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여론의 비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회의 이틀째에 BOA와 바클레이즈는 사실상 인수 의사 포기를 정부 측 관계자에게 전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이때부터 다양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헨리 폴슨 장관은 14일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주재했다.

밀고 밀리는 협상에도 불구하고 리먼은 새 주인을 찾지 못했지만 정부는 메릴린치를 BOA에 합병시키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정부 측 관계자는 이번 협상을 계기로 월가 금융사 간 짝짓기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덩치가 크면 망하지 않는다는 월가의 믿음은 한순간에 깨졌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