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메릴린치가 1971년 월스트리트 증권사중 처음으로 주식을 공개하면서 선보인 '황소' 로고는 불마켓(bull marketㆍ강세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메릴린치가 BOA(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되면서 더이상 황소 로고도 보기 어렵게 될 전망이다.
플로리다의 작은 도시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찰스 E 메릴이 22세에 존스 홉킨스 대학을 졸업하고 소다수 판매기를 파는 동갑내기 에드먼드 린치를 만나면서 메릴린치의 태동이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채권중개인으로 일하던 메릴은 1914년 뉴욕 월가에 찰스 메릴사를 설립했고,다음 해 린치가 사업에 합류하자 회사 이름을 메릴린치로 바꿨다.
메릴린치는 자기매매(딜링)보다는 일반 대중투자자 상대의 영업을 바탕으로 '고객 이익 제일주의'를 표방했으며 매매 수수료를 주요 수입으로 성장,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증권투자의 대중화를 이끌며 증권사의 종합 금융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엔 "증권사란 대중에게 봉사하는 곳이어야 한다"며 월가 최초로 체인점 체제를 도입한 창업자 메릴의 철학이 작용했다.
1940년엔 E A 피어스 등을 합병한 뒤 윈스롭 스미스의 합류로 '메릴린치 피어스 스미스'로 이름을 바꿨다. 1941년 월가 최초로 회사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담은 연차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1959년 파트너제에서 주식회사로 변신하며 업계 제2위 베체를 앞지른 메릴린치는 1969년 투자신탁(자산운용)시장에 진출,이 분야에서도 미국 최대의 판매업자로 등극했다. 1973년 자회사를 아우르는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산하에 세계 최대의 증권회사인 메릴린치피어스페너앤드스미스를 비롯해 보험ㆍ부동산ㆍ금융회사 등의 자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증권 브로커리지 부문과 주식 리서치 부문 등에선 세계 최고로 꼽혀왔다.
이처럼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기술주 거품 붕괴 등 위기 때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발전했던 메릴린치도 서브프라임발 신용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BOA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곳은 BOA였다. BOA는 1904년 이탈리아계 A P 잔니니가 샌프란시스코 이탈리아인 거주지역에 처음 문을 연 은행으로, 봉급생활자들에 대한 소액금융을 중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이래 체이스내셔널은행 등을 인수하며 거대 상업은행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BOA는 지난 1월 파산 위기에 몰렸던 미국 최대 모기지업체인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을 40억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