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연기한 데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AIG의 구제금융 신청 등 미국 금융시장의 요동으로 국내 은행 및 기업들의 달러 확보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은행들은 외평채 발행조건을 벤치마크 삼아 추석연휴 이후 적극적으로 달러 조달에 나선다는 계획이었지만 일단 관망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뜩이나 시장에 외화유동성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일시적으로 달러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계 자금의 본국 유턴 속도가 빨라질 경우 기업들의 외화자금난이 가중될 수도 있는 실정이다.

◆은행들 달러 조달 미뤄

산업은행 관계자는 "추석연휴 전에 외평채가 발행되면 이를 참고 삼아 이달 말께 미국에서 투자설명회를 열어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며 "하지만 외평채 발행이 연기된 만큼 주간사 등과 함께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15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국제금융시장 그 중에서도 특히 월가의 상황과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을 점검하는 게 우선"이라며 "만약 투자자들이 터무니없이 가격을 후려치려 한다면 이달 말 발행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도 "지금은 시장 상황을 유심히 관찰할 때"라고 밝혀 당장 대규모 외화표시채권 발행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수출입은행은 특히 소액 사모 방식으로 외자를 꾸준히 조달해 온 만큼 일정을 좀 늦춰도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책은행에 비해 가산금리가 더 높은 시중은행들의 외자 차입도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외평채 발행 이후 글로벌 본드 발행을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일단 시기를 좀 늦춰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리먼 브러더스가 자본을 유치하지 못하고 AIG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을 보면 글로벌시장에서 달러 유동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추가 조달은 둘째치고 투자자들이 만기 때 연장만 해 줘도 다행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어려움은 기업이 더해

미국 금융시장의 충격으로 삼성 현대 포스코 등 일부 글로벌기업을 제외한 국내 기업 대부분이 달러 확보에 애로를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 관계자들은 "우리 스스로도 달러 구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당분간 기업에 대한 달러 대출을 엄격히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원ㆍ달러 환율의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체 조달이 여의치 않은 만큼 환율이 뛰면 달러 조달비용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원ㆍ달러 환율은 '9월 위기설'이 피크였을 때 1160원 근처까지 치솟은 바 있다. 미국계 자산운용사 등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주식과 채권을 팔아 본국으로 송금하는 일이 다시 빚어진다면 원ㆍ달러 환율은 또 다시 급등할 수도 있다. 외환딜러들은 그러나 미국 경제의 위기로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강세에서 약세로 반전되는 추세여서 환율이 상승하더라도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