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과 AIG의 구제금융 요청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영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금융회사 간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말이다. "정부가 현재 국제금융 시장의 심각성을 알고나 있는지 답답할 뿐"이라는 반응이다.

금융회사 간부들이 정부의 무사안일 사례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이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에 대한 조치.금융위원회는 리먼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15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16일 시장이 열리기 전 리먼 서울지점에 금융감독원 검사인력을 파견해 재산상태를 실사하고 국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반업무를 신속히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투자자 보호를 언급하긴 했지만 검사인력을 파견해 재산상태를 점검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일본 금융청은 15일 밤 "리먼브러더스증권 일본법인에 대해 예탁자산의 반환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정지한다"고 명령했다. 일본 리먼에 대해 자산의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는 조치도 함께 내렸다. 한국 금융위는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조치가 전해지자 16일 아침이 돼서야 리먼 서울지점 2곳의 일부 영업을 정지시켰다.

금융회사 간부들은 정부의 달러 조달 정책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해외IR(기업설명회)에 나서면서 가산금리를 2%포인트 이내로 생각하고 있다고 떠들고 다닌 것부터가 실책이란 진단이다. 자기 패를 다 보여주니 상대편이 더 높게 베팅하고 나올 것이란 것은 자명한 이치라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뉴욕까지 갔지만 현지 냉기류도 파악하지 못한 채 좌판을 걷고 들어온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뉴욕에서 철수한 직후 리먼 AIG 메릴린치 사태가 줄줄이 터져 나왔고,이 때문에 가산금리는 더욱 치솟았는데 정부 당국자들은 뭘 하고 왔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이럴 바에야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놓고 정부는 쉬는 게 낫다"는 금융회사 간부들의 농담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