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의 리먼 인수 중단 막전막후] 靑, 부실규모 알고 막판 인수제동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번 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습니다. 산업은행도 톡톡히 홍보했고요. "
리먼브러더스 인수작업을 중단하고 16일 기자들과 만난 민유성 산업은행장 얼굴엔 안도의 빛이 역력했다. 자칫 리먼을 인수했다가 산은 자체가 위험해질 가능성을 중도에 차단해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민 행장은 "무엇보다 리먼 인수에 대해 청와대 금융위원회 등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리먼으로부터 자금 투입을 요청받은 것은 지난 7월 초.민 행장이 리먼에 근무하면서 함께 일해 온 리처드 풀먼 회장이 직접 연락을 취해왔다. 리먼은 산업은행에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가져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민영화 과정에서 세계적 투자은행(IB)으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세운 산업은행의 귀가 솔깃해졌다.
내부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무리다'는 의견과 '기회다'라는 견해가 팽팽했다. 하지만 적극적 성향의 민 행장은 추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민 행장은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청와대에 보고했다. 정부는 '위험요인을 철저히 검토해 추진해 볼 것'이란 지침을 내렸다. 산은은 인수합병(M&A) 전문 자문사인 페렐라와인버그파트너스와 자문계약을 맺고 내부직원을 투입해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산은은 7월 말 일주일간 리먼에 대한 실사를 실시했다. 산은은 자체 자금만으로 리먼을 인수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국내 시중은행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짰다. 자금은 산은이 2조원을 대고 컨소시엄 전체로는 7조~8조원을 모은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터져나왔다. 리먼은 당초 2분기까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관련 부실을 모두 정리한 것으로 생각됐지만 미국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부실이 추가로 생겨났다.
결국 8월 들어 계획이 전면 수정됐다. 리먼을 굿뱅크와 배드뱅크로 나누고 굿뱅크의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방안이었다. 굿뱅크 인수비용은 50억~60억달러로 책정했다. 리먼과 밀고 당기는 과정은 한동안 계속됐다.
청와대가 훈수를 두고 나온 것이 이 시점이다. 청와대는 산은이 자칫 무리하다간 산은은 물론 한국의 금융산업,한국 정부 전반에 대한 신뢰성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25일 수석회의 등을 거쳐 산은의 리먼 인수가 부적절하다는 데 최종 의견을 모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리먼을 인수하더라도 주가의 추가하락 가능성이 있는 데다 리먼의 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봤다"면서 "국부 8조원 가운데 2조4000억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등 정치·경제적 리스크가 너무 컸다"고 밝혔다.
민 행장은 청와대의 조언을 수용했다. 대신 리먼과의 약속대로 '협상 중단'에 대해 일절 함구했다. 하지만 리먼 관계자들의 이에 대한 발언이 지난 9일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급기야 14일 리먼은 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됐다.
민 행장은 "이번 딜은 산은이 글로벌 IB로 커 가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이었다"며 "글로벌 무대에서 KDB 이름을 널리 홍보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박준동/박수진 기자 jdpower@hankyung.com
리먼브러더스 인수작업을 중단하고 16일 기자들과 만난 민유성 산업은행장 얼굴엔 안도의 빛이 역력했다. 자칫 리먼을 인수했다가 산은 자체가 위험해질 가능성을 중도에 차단해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민 행장은 "무엇보다 리먼 인수에 대해 청와대 금융위원회 등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리먼으로부터 자금 투입을 요청받은 것은 지난 7월 초.민 행장이 리먼에 근무하면서 함께 일해 온 리처드 풀먼 회장이 직접 연락을 취해왔다. 리먼은 산업은행에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가져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민영화 과정에서 세계적 투자은행(IB)으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세운 산업은행의 귀가 솔깃해졌다.
내부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무리다'는 의견과 '기회다'라는 견해가 팽팽했다. 하지만 적극적 성향의 민 행장은 추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민 행장은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청와대에 보고했다. 정부는 '위험요인을 철저히 검토해 추진해 볼 것'이란 지침을 내렸다. 산은은 인수합병(M&A) 전문 자문사인 페렐라와인버그파트너스와 자문계약을 맺고 내부직원을 투입해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산은은 7월 말 일주일간 리먼에 대한 실사를 실시했다. 산은은 자체 자금만으로 리먼을 인수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국내 시중은행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짰다. 자금은 산은이 2조원을 대고 컨소시엄 전체로는 7조~8조원을 모은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터져나왔다. 리먼은 당초 2분기까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관련 부실을 모두 정리한 것으로 생각됐지만 미국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부실이 추가로 생겨났다.
결국 8월 들어 계획이 전면 수정됐다. 리먼을 굿뱅크와 배드뱅크로 나누고 굿뱅크의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방안이었다. 굿뱅크 인수비용은 50억~60억달러로 책정했다. 리먼과 밀고 당기는 과정은 한동안 계속됐다.
청와대가 훈수를 두고 나온 것이 이 시점이다. 청와대는 산은이 자칫 무리하다간 산은은 물론 한국의 금융산업,한국 정부 전반에 대한 신뢰성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25일 수석회의 등을 거쳐 산은의 리먼 인수가 부적절하다는 데 최종 의견을 모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리먼을 인수하더라도 주가의 추가하락 가능성이 있는 데다 리먼의 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봤다"면서 "국부 8조원 가운데 2조4000억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등 정치·경제적 리스크가 너무 컸다"고 밝혔다.
민 행장은 청와대의 조언을 수용했다. 대신 리먼과의 약속대로 '협상 중단'에 대해 일절 함구했다. 하지만 리먼 관계자들의 이에 대한 발언이 지난 9일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급기야 14일 리먼은 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됐다.
민 행장은 "이번 딜은 산은이 글로벌 IB로 커 가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이었다"며 "글로벌 무대에서 KDB 이름을 널리 홍보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박준동/박수진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