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본격적으로 회수하고 있다. 파산 보호 신청으로 현금 확보가 시급한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한 미국계 투자은행(IB)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상황이 한단계 진정될 때까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매도 공세가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6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만 6039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지난 6월12일(9731억원)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외국인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표 우량주를 집중적으로 내다 팔면서 자금 회수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외국인의 대형주 순매도 규모는 6111억원으로 전체 유가증권시장의 순매도보다 많았다. 대표업종인 전기전자업종과 운수장비업종에서만 각각 1000억원이 넘는 물량을 쏟아냈다.

특히 이날 HSBC 창구에선 SK(65만여주) GS(56만주) 하이닉스(53만여주) 에쓰오일(47만여주) LG전자(31만여주) 등 대표 우량주 38개 종목이 단 한 주의 매수주문없이 매도 주문만 쏟아져 모두 체결됐다. HSBC는 지난 12일 기아차 매수주문이 13만주나 나오는 등 그동안 순매수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대량 매도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증권업계는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영업 정지로 주식거래를 할 수 없게 된 리먼브러더스의 보유 주식이 HSBC를 통해 나왔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HSBC 창구를 통해 대규모 매도 주문을 낸 것은 리먼일 가능성이 높다"며 "리먼이 보유한 우량주를 현금 확보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앞으로 상당 기간 주식 매도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안승원 UBS 전무는 "현금을 확보해야하는 미국계 IB들로선 신흥시장 중에서 유동성이 높아 현금화를 하기 쉬운 한국 시장에서 계속 주식을 팔아 현금을 빼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유럽계 IB인 UBS는 이날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UBS의 위기설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미 지난 5월에 160억스위스프랑(한화 약 16조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해 2분기 말 현재 자본건전성 지표의 하나인 티어(Tier)1 비율이 11.6%로 전세계 투자은행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