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월가 쇼크'의 날벼락을 맞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증시가 9ㆍ11 이후 최대 폭으로 추락했고 국내 증시도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세계 굴지의 금융ㆍ투자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장면을 보면서 너나없이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글로벌 경제의 심장부인 월가의 충격도 충격이지만,미국 정부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2000조원이 넘는 나랏돈을 쏟아붓고도 5대 금융기업 중 3개가 쓰러지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걱정이 태산 같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무슨 생각을 할까. 신혼여행을 떠나서도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 분석>을 읽었다는 '오마하의 현인'은 오늘 무슨 책을 펼칠까.

8세 때부터 주식 관련 책을 읽었다는 그는 11세에 처음 주식을 산 뒤 "너무 늦었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그에게 주식은 단순한 유가증권이 아니라 알알의 자산가치가 꽉 들어찬 '미래 어음'이다. 그의 성공 비결은 해당 주식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고 측정한 뒤 적절한 때가 오기까지 '품안에서 키우고 익히는' 부화의 지혜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그는 기술보다 내재가치라는 콘텐츠의 질을 중시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외부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결단을 내렸다. 어제처럼 시장이 정신없이 요동칠 때는 '심리 상태'가 가장 중요한데,그는 이 점에서 다른 투자자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 그레이엄도 "투자자의 가장 큰 적은 시장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투자심리가 급속하게 위축된 시장에서는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게 마련이다.

버핏의 이 같은 능력은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졌음을 예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가 보통 사람보다 5배나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는 많이 읽는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 주식투자의 달인인 존 템플턴도 자신을 '살아 있는 도서관'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 버핏의 '특별한 친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또한 공식석상에서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주식투자와 책읽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그의 '부자가 되는 비결 18계명' 중 첫 번째와 두번 째는 '작은 돈을 아껴야 부자가 된다,경제 교육이 평생 부를 결정한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변명하지 마라'이다. 그리고 네 번째,그는 표정을 한 번 가다듬고 이렇게 말한다. "사실은 책과 신문 속에 부가 다 들어있어요. "

다시 처음의 궁금증으로 돌아가서,그가 지금의 급락장세에서 집어들 책은 어떤 걸까. 남들이 위축된 심리로 불안해할 때 '가치의 무게'를 추로 삼으며 '더 가까워진 새벽'을 음미하는 그의 자세로 볼 때,단언컨대 주식투자 관련서를 펼칠 확률은 거의 없다. 좀 엉뚱할 지 모르지만 그는 오늘 시집이나 인문ㆍ역사서를 읽을 것이다. 그것이 격변의 시장을 관통하는 '지혜의 서(書)'이기 때문이다. 아이팟 신화를 일군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을 펼쳐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