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 위기에 처한 월가에서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에 이어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가 생사 기로에 내몰렸다. 15일 뉴욕 증시에서 AIG 주가는 지난 주말에 비해 60.79% 폭락한 4.76달러를 기록했다. 뚜렷한 자구 방안을 내놓지 못한 데 따른 실망 매물이 쏟아져 나온 탓이다. AIG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스프레드도 4.1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CDS 스프레드가 커진다는 것은 시장에서 그만큼 AIG의 부도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얘기다. 특히 AIG 채권 또한 정크 본드 수준까지 낮아져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도 사실상 막혀버린 상태다.

◆AIG,왜 위기에 몰렸나

AIG가 위기에 처한 것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관련 사업에서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다. AIG는 단순한 보험사가 아니었다. 리먼처럼 모기지 채권을 모아 유동화시킨 신용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과 파산 위험을 보증한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를 적극적으로 팔았다. CDS는 일정 수수료를 받고 금융사가 파산 위험을 보증한 것이다. 실제로 AIG는 '투자은행'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AIG의 파생상품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무려 4410억달러에 달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켄 루이스 회장이 이날 CNBC방송에 출연,"AIG의 파산은 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AIG가 파산하면 리먼 사태보다 더 큰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G는 최근 3분기 동안 183억달러의 손실을 냈다. 주택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AIG는 앞으로도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배경에서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15일 일제히 AIG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AIG의 신용등급을 'Aa3'에서 'A2'로 두 단계 낮췄고,S&P는 AIG의 신용등급을 3단계 하향 조정했다. 피치도 AIG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두 단계 내렸다.

◆정상화 가능성은

AIG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돌입했다. 전날 정부에 400억달러 규모의 긴급 브리지론(담보없는 단기대출)을 요청한 데 이어 알짜 자회사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항공기 900대를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 리스 자회사(ILFC)와 연금 및 자동차보험 부문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월가에서는 AIG가 400억달러를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정부 당국도 간접적으로 지원 방안을 모색 중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AIG를 돕기 위해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에 긴급자금 700억~750억달러를 조성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CNBC방송이 전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도 "AIG에 대한 구제금융은 없다"고 밝혔지만,AIG 최고위층과 만나 유동성 위기 극복방안 등을 논의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AIG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리먼에 이어 AIG가 파산하면 금융위기는 극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어서다.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 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AIG가 자회사 자산 200억달러어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AIG가 긴급 유동성을 지원받을 때 자회사 자산을 담보로 쓸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보험사는 은행과 달리 뱅크론을 빚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보험계약자들이 한꺼번에 보험을 해약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